금융권 ‘스토리텔링 마케팅’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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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힘을 빌려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마치 친구에게 들려주듯이 얘기한다. 회사 소개나 제품의 성능을 홍보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바로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 스토리텔링은 사건이나 사실의 단순 나열이 아닌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통해 상대방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의사소통방법이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소비자의 감수성을 자극해 상품 구매로 연결짓고자 하는 기법이다. 자기 회사나 자사 제품의 장점을 부각해 주입시키는 방법은 이제 잘 통하지 않는다. 소비자 입장에선 ‘그게 그거다’라는 인상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소비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특히 딱딱하고 소비자에게 문턱이 높다는 이미지가 강한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사용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최근 ‘스토리가 있는 금융’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스토리가 있는 금융이란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고객의 상황과 니즈에 맞는 상품을 제안함으로써 ‘은행에 대한 고객 가치 극대화’가 아닌 ‘고객에 대한 은행 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개념은 고객을 이익 창출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던 관행을 반성한 데서 출발해 고객 중시사고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KB금융그룹이 지향하는 ‘시우(時雨)금융’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적절한 때에 알맞은 양으로 필요한 만큼 내리는 비’처럼 시우금융은 고객에게 필요한 금융상품과 서비스·혜택 등을 한 발 먼저 다가가 제공하는 것이다.

먼저 가장 크게 눈에 띄는 변화는 성과관리체계인 KPI(Key Performance Indicator·핵심성과지수)의 전면적 개편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고객지향적 성과관리 TFT’를 운영해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 성과 평가에서 결과보다는 과정에 대한 평가를 중요시하고, 고객가치부를 신설해 밀어붙이기 식이 아닌 ‘코칭’ 중심으로 바꿨다.

KPI는 가치 중시의 가치향상지수(VI·Value-up Index)로 변경했다. 고질적인 KPI 지상주의를 불식시키고 직원들이 자율적·능동적으로 영업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과거 영업점 간 과다한 경쟁과 무리한 영업의 원인이 됐던 지점장 종합평가 기준도 손질해 재무성과 결과보다는 과정·역량에 대한 평가를 강화했다. KPI 줄세우기로 영업점장들을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가 편법과 비윤리적인 영업의 유혹에 빠지게 하는 경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건호 은행장의 분명한 의지다.

고객만족도조사(CSI) 또한 형식적이고 점수 위주의 방식으로 왜곡 운영되던 것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영업점장이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실질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방향으로 바꿀 예정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스토리가 있는 금융이 영업문화로 성공적인 정착을 한다면 창구 직원의 상품 권유가 부담스러워 은행 방문을 꺼리던 고객들도 보다 편안하게 영업점에 와서 필요한 업무를 볼 수 있게 된다. 직원들 또한 실적을 위해 상품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상품만을 판매함으로써 금융전문가로서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명수 재테크 칼럼니스트 seom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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