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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된 권력은 강하다. 유권자의 표가 모여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더 강할 때도 있다. ‘지명’된 것만으로도 권력이 되는 자리가 있다. 중앙은행 총재다. 1979년 여름 인플레이션이 10%에 달하자 지미 카터 대통령은 초조했다. 다음해 재선 전망은 어두웠다. 그는 결단을 내렸다. 폴 볼커를 연방준비제도(Fed·미국의 중앙은행) 의장으로 임명했다. 볼커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연평균 12%를 넘던 물가상승률이 1983년에 3%까지 떨어졌다. 모든 경제정책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금리를 올리자 경기가 냉각됐다. 결국 카터는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했다. 경기침체가 뒤통수를 친 결과다. 선출되지 않았으면서도 선출된 권력을 갈아치울 수 있는 게 중앙은행 총재다.
유럽의 금융·재정위기가 이어지던 2011년 11월 유럽중앙은행(ECB)은 시중에서 채권을 고작 30억 유로어치만 구입했다. 전주(前週)에는 100억 유로어치를 샀다. ECB가 채권을 덜 사자 시중금리가 뛰었다. 이탈리아에 가하는 압박이었다. ‘믿을 수 없는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물러나라’. 고금리가 지속되면 이탈리아는 지급불능에 빠질 수도 있었다. 베를루스코니는 버티지 못했다. 베를루스코니에게 결정타를 날린 사람은 같은 이탈리아 출신인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였다.
이주열 전 부총재가 차기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지명됐다. 차기 총재는 개정된 한국은행법을 적용받는다. 2011년 9월 한국은행법 1조(목적)가 개정됐다. ‘물가안정’ 도모(1항) 외에 ‘금융안정’에 유의해야 한다는 조항(2항)이 추가됐다. 이미 세계 중앙은행은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금융위기 때 각국의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라는 변칙 수단을 들고 나온 게 대표적이다. 이 특단의 조치로 금융시장 붕괴를 막았다.
수백 년간 중앙은행의 운영 철학은 ‘원칙’이었다. 이게 바뀌고 있다. 새로 조명되는 철학은 ‘유연함’이다. 그렇다고 ‘독립’이라는 중앙은행의 핵심 가치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1949년 Fed의 아서 블룸피드 과장이 한국에 건너와 중앙은행 설립을 주도했다. 그는 ‘통화신용정책을 한국은행이 맡는다’는 주장을 폈다. 당시 김수선 의원은 “금통위가 대통령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지면 대통령은 껍데기이고 한국은행 총재가 알맹이냐”고 따졌다. 그럼에도 국회는 50년 5월 찬성 78, 반대 6으로 한국은행법을 통과시켰다. 한국은행에 ‘독립’과 ‘자율’이라는 정신이 면면히 흐르는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자신의 판단 하나로 국민을 살찌울 수도, 피폐하게 할 수도 있다. 그가 꽉 막혔다는 한은의 불통 이미지를 벗고 유연한 통화신용정책을 구사할지, 그러면서 청와대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비아냥을 털고 한은의 독립을 지킬 수 있을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에 책임은 더 막중한 법이다.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