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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납치 의혹 … 기장·부기장 자택 수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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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실종된 MH370 여객기 승객 가족들이 15일 머물고 있는 베이징의 호텔에서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의 실종기 관련 기자회견을 TV로 시청하고 있다. 여객기가 고의로 방향을 바꿔 비행했고 추락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자 일부 가족들은 다소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베이징 로이터=뉴스1]

여객기 실종 8일 만인 15일(현지시간)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누군가 고의적으로 말레이시아항공 MH370편의 통신 시스템을 끊고 비행 경로를 바꿨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여객기 실종의 유력 가설이 다시 납치로 바뀌면서 수사의 초점도 승무원을 포함한 전체 탑승인원 239명으로 전환됐다. 기장과 부기장, 조종석 접근이 용이한 승무원 등 12명이 우선 조사 대상이다.

 나집 총리의 기자회견 직후 말레이시아 경찰이 우선 자하리 아맛 샤(53) 기장과 부기장 파리크 압둘 하밋(27) 등 승무원 2명의 자택을 수색했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경찰은 사건 직후부터 기장과 부기장의 집을 감시해 왔지만 집에 들어간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수색은 각각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비행 경력 30년이 넘는 자하리 기장의 집에선 모의비행 시스템 등이 발견됐지만 말레이시아항공 측은 “자하리 기장의 취미일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CNN은 “미 정보당국은 조종석에 있던 사람들이 납치를 주도했다는 가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경찰청장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압수한 모의비행 시스템을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MH370을 정비한 지상 근무자들에 대한 조사도 확대했다.

 영자지인 말레이시아 크로니클은 자하리 기장이 평소 열렬한 반정부 운동 지지자였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고 16일 보도했다. 자하리 기장은 베이징 비행을 앞두고 불과 몇 시간 전에 열린 반정부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임 전 부총리의 공판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집 총리의 정적으로 동성애 혐의로 기소된 안와르 전 부총리는 이날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자하리 기장이 재판 결과에 극도로 흥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 데일리미러는 자하리 기장의 부인과 자녀 3명이 여객기 실종 전날인 7일 집에서 나와 거처를 옮겼다고 보도했다.

 부기장인 파리크는 최근 보잉 777의 조종 면허를 취득했으며 결혼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AP통신은 파리크와 다른 동료 1명이 2011년 두 여성을 조종석으로 초대해 함께 흡연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전력에 근거해 이날도 누군가를 불러들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CNN은 조종사의 마지막 말로 전해지는 “오케이. 알았다. 굿나잇”이라는 통신도 이미 조종석을 장악한 제3자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승객 227명에 대한 조사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됐다. 승객들은 14개국 출신으로 이 중 153명이 중국인이다.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은 16일 현재까지 용의자나 의심스러운 인물을 특정하지 않고 있다. 칼리드 청장은 “각국에 승객 신원 등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으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료가 많다”고 말했다. ‘테러 상황에서 의심스럽지 않은 용의자는 없다’는 원칙에 따라 사실상 모두가 용의자가 된다. 수사당국은 위조 여권으로 MH370에 탑승해 의심받았던 이란인 2명을 포함해 모든 승객의 병력, 가족 문제, 스트레스 등 심리적 상태를 조사하고 있다. 이란인들은 앞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어머니를 찾아가던 보리아 누르 무함마드 메다드(19)와 덴마크행 표를 끊은 델라바르 세이에드 무함마드 레자(29)로 확인됐었다. 단순히 유럽 불법 이주를 시도한 것으로 결론이 나는 듯했지만 수사 방향이 바뀌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BBC는 두 청년 중 델라바르의 이주 동기는 확실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신원이 확인된 중국인 승객 중 영국 케임브리지 공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리유첸(27)도 눈에 띈다. 토목공학 전공자인 리유첸의 탑승 사실은 대학 측이 발표한 성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최근 결혼식을 올렸고 베이징에서 직장을 얻었으며 전도유망했다는 게 대학 측 설명이었다. 이밖에 얼마전 텍사스에서 말레이시아로 이주한 IBM 간부 필립 우드(50·미국), 인도계 캐나다인 무케티스 무케리지(42) 등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승객들이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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