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도전하자|김기동 목사<서울 홍제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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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인간은 나 밖의 타자로 인해 태어난 것부터 하나의 운명의 시발이다. 이같이 자신의 선택이나 결정과는 상관없이 태어난 인간존재를「주어진 존재」또는「던져진 존재」라고들 한다. 모태로부터 불구가 되어 출생한 소경이 있다면 그 사람의 조상의 유전이나 선조의 죄과를 논하기에 앞서 이 또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오랫동안 운명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놓고 논쟁을 해왔다. 일찌기「헬라」인들은 인간의 운명을 지배 관리하는 세 여신이 있다고 믿어왔다. 첫째 여신이「크로토」로서 인간의 생활로부터 생명전체를 유지 보호해주는 신이라고 믿어왔다. 둘째 여신은「라케시스」로서 인간의 생애를 임의로 조정하는 위대한 여신이라고 공정했고, 세째 여신인「아토로포스」는 인간의 생명을 무한히 이끄는 신이라고 소박하게 믿어왔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모든 사건과 행위의 가치 기준을 운명적으로 풀이 해석하고 있다.
물론 운명론자들의 이론도 수긍이 가고 어느 정도 타당성도 인정되지만 이것은 소극적인 태도요 더 적극적인 삶의 차원이 절실하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씌워진 운명의 탈을 박차고 일어서야 할 자유 의지도 부여받고 있다는 엄숙한 존재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원래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지고한 특권으로 또한 선물로 부여해 주시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의 싯점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요망되는 문제의 하나로 역사는 무엇이냐, 그리고 과연 역사적인 존재란 올바른 자각이 있느냐는 명확한 역사의식을 강조하고 싶다. 「링컨」이 말했듯이 우리는 역사에서 피할 수 없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절대적 상황을 실존철학자들은 한계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발상법으로 볼 때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의 하나인 것이다. 역사가「토인비」가 그의 저서『역사의 연구』에서 강조했듯이 역사는 도전인 것이다.
역사에는 새 도전의 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역사는 숙제이기도 하다.
자기 지혜와 결단과 의지를 동원해서 풀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역사의 숙제를 잘 푼 민족과 개인은 결코 부끄러운 열등생이 될 수가 없다. 성서에 보면「에서」와「야곱」이란 인물이 나온다. 그들은 같은 환경에서 같은 날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지만 한사람은 불행한 길을, 또 한사람은 행복한 인생 길을 개척한 좋은「샘플」로 그려져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인생의 묘미와 신비가 깃들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운명이 절대적인 것처럼 인간의 자유의지도 절대적인 것이다. 역사에는「카이로스」적인 요소가 있다. 그래서「토인비」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긴장된 역학이라고도 했다.
개인과 민족은 역학의 원리가 작용하는 역사의 도전에 대해 지혜 있고 용감하며 책임 있는 응전을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깊은 잠에서 깨어 지금까지의「카리스마」적인 사고양식을 지양하며 열등의「콤플렉스」를 바로잡고 순탄한 길에는 비약도 전진도 창조도 있을 수 없음을 자각해야겠다.
우리는 부단히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되어져야 하는 존재로서 우리네 생활권 심중깊이 깔려있는 운명의식을 새 가치관으로 바꾸고 바람직한 질서를 건설하며 보다 높은 이상의 추구자가 되어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생활인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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