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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를 뛰어넘어 경관과 하나 되게 물 흐르듯 디자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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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기간 5년, 총 면적 8만6574㎡, 사업비 4840억원-. 21일 정식 개관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는 숫자만으로도 뉴스가 된다. 한데 이를 모르더라도 눈길이 간다. 생김새 때문이다. 거대한 버섯 같다고 해야 할까, 우주선 같다고 해야 할까. 양 옆으로 흘러내리는 듯한 거대한 알루미늄판 외관이 시선을 압도한다.

이 오묘한 건물을 만든 이는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64)다. 이라크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활동하는 그는 2004년 여성으로는 처음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명성만큼이나 스타일 역시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유기적인 곡선과 비정형·유선형으로 대표되는 파격이다. 건물은 사각이요, 직선이라는 관습을 철저히 거부한다. 하디드의 작품을 말로 묘사하는 게 불가능한 이유다.

그가 DDP 공식 개관에 앞서 한국을 찾았다. 11일 기자간담회와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에 이어 12일에는 국제 포럼과 강연에 참석했다. 빽빽하게 이어진 일정에서 그는 다양한 질문을 소화하며 자신의 건축 철학에 대해, DDP 프로젝트에 대해 털어놓았다. 과연 그는 DDP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틀간 그녀를 지켜보며 그 궁금증을 조금은 풀어낼 수 있었다.

건축물 자체가 지형이 되는 곡선건축

누가 봐도 비슷한 생각을 할 터다. 도대체 저건 어떻게 만들었을까. 왜 저런 생각을 해냈을까.

DDP의 외관은 곡면인 데다 이음새 하나 없이 이어져 있다. 게다가 그것을 감싼 것은 알루미늄이다. 조각은 모두 4만5133장. 고유 번호가 매겨질 정도로 하나하나 크기가 모두 다르다.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은 전례 없는 공법을 위해 선박 등 모든 금속 성형 분야 기술을 총망라해 세계 최초로 2차 곡면 성형과 절단 장비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디드의 곡면 건축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아제르바이잔 문화센터, 번햄 파빌리옹, 두바이 오페라 하우스 등에서 보듯 그의 시그너처나 다름없다. 하지만 묻고 싶다. 그의 작품에 왜 직선과 직각이 없는 걸까. 그는 여기에 자연과의 조화라고 대꾸했다. “초기엔 직선의 날카로움도 담았지만 점점 건물이 대형화하면서 주변 경관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최신 설계와 기술을 이용해 가능하다면 어우러지는 건축을 추구한다.”

최근 국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했다. “20세기의 입방형 건축이 이제는 맞물리고, 통합되고, 젖어드는 곡선형 건축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우리가 보는 자연이 균일하지도 규칙적이지도 않지만 거기서 오히려 안정감과 평화를 느낀다”고 설명했다. DDP는 ‘조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건축물 자체가 지형이 되도록’ 설계한 작품이다. 지붕에 인공적으로 만든 잔디밭이 그 예다.

모든 것이 이어지는 컨셉트는 비단 외관만이 아니다. DDP엔 외부도 내부도 뭐하나 ‘똑 떨어진’ ‘반듯한’ 것이 없다. 들고 나는 출입구도 여러 갈래요, 알림터에서 시작한 발길은 그저 생각 없이 가다 보면 배움터, 살림터로 이어진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동선은 빙빙 돌아가고, 창은 비스듬하니 조명도 구불구불하다.

‘물 흐르듯’이라고 표현되는 이 컨셉트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는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늘 완벽히 흐르는 듯한 건축을 하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이것을 선과 선의 교차라고 말하고 싶다. 다양한 선들이 겹쳐지고 어긋나면서 구조가 단단해 지는 데다 순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선들이 교차하면서 작은 공간이 생겨나는 원리도 숨어 있고.”

이처럼 단절이 없는 공간에선 주변 경관과도 자연스레 연결되며 이것이 새로운 도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DDP를 구상하면서도 이 부분에 가장 독창성을 발휘했다고 했다. 공원과 건물, 그리고 동대문 쇼핑거리로의 동선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경계 없는 무브먼트(움직임)’에 초점을 맞췄다. 도시의 변화에 대응하는 건축, 그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던 ‘어바니즘(Urbanism)’의 정체가 이것이었다.

마치 우주선처럼 미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DDP 외관. 4만여 장의 알루미늄판으로 감싸는 최첨단 기술로 지어졌다.

평면도로는 설명되지 않는 아이디어

복잡한 설계 때문에 DDP는 완공되기까지 건축계로부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하디드의 프로젝트에서 종종 벌어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는 런던 AA스쿨에 다니던 당시 얘기를 꺼냈다.

“4학년 때 어떤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싶은데 단면도·평면도·입면도를 통해 전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림을 그렸다. 그냥 그림이 아니라 3차원의 스토리를 이야기하려는 것이었다.”

실제 지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그린 그림이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페이퍼 건축’ 취급했다. 마침내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건축가’의 오명을 벗은 건 비트라 소방서(1994)를 완성한 이후였다. 이제는 독일 라이프치히 BMW센트럴 빌딩(2005), 이탈리아 로마 MAXXI(2010)에 이어 2020 도쿄 올림픽 경기장까지 그의 작품은 세계 주요 도시 곳곳에 있다. 뭣보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이 많은 것을 대신한다.

그럼에도 궁금하다. 어느 하나 평범치 않은 그 많은 작품의 영감을 어떻게 얻는 것일까. 그가 가장 먼저 꼽은 건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1878~1935)의 절대주의였다. 특히 초기작은 극단적인 추상화의 대가로부터 중요한 것만을 추려내는, 그래서 가벼움과 유기성에 초점을 두려 했다. “춤을 춘다면 가볍게 내려앉을 수 있는 단편적인 것에 끌린다”는 그는 요즘은 러시아 사진들의 왜곡과 투영을 보며 영감을 얻기도, 과거의 아이디어에서 모순성을 찾아내기도 한다고 했다.

위에서 내려다 본 DDP. 지붕 위에 잔디를 깔았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 만드는 게 건축

건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역사성이다. DDP도 예외가 없다. 사실 기자 간담회나 시장 면담, 포럼에서는 ‘어떻게 과거를 담아냈는가’에 대한 질문이 연거푸 쏟아졌다. 한국 근대 이후 스포츠문화의 산실이었던 동대문운동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비난의 뉘앙스도 섞였다. 더구나 DDP 공사 시작 4개월 이후 도성을 통과하는 수문인 이간수문과 조선 중기 왕의 호위 정예부대들이 거처했던 하도감 유구 등 유적이 대거 발견됐다는 게 역사성의 비중을 더했다.

“설계 공모를 할 때부터 동대문경기장의 역사성을 담아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그것만 생각했다. 실제 구조물을 남기기는 힘들었고, 조명탑을 살려야 하나 고민했다. 나중엔 전시실 안에 야구장의 기록을 남기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서울 성곽이나 하도감처럼) 옛날 유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건 굉장히 좋은 부분이다.”

전날 기자 간담회에선 같은 질문에 대해 ‘설계도 자체가 아레나 같도록 의도했다’는 미진한 답을 했던 그는 질문이 반복되자 건축의 역사성에 대한 색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역사라는 것, 건축적 기억이라는 것을 좀 더 말랑말랑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요지였다. “일정한 룰을 지켜가면 변화도 괜찮다. 여기에 저항하지 않는 건축적 언어가 필요하다.” 앞으로 공원에 지붕을 더 더할 수도 있고, 정원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하는 그의 부연 설명 속엔 과거만큼 미래의 변화 역시 DDP의 역사가 된다는 주장으로 들렸다.

그는 공공 건축으로서의 DDP의 의미도 수차례 언급했다. “부자여도, 가난해도 이런 훌륭한 공공 장소에서 함께 소통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다.” 건축을 가격으로 매겨지지 않는 ‘더 큰 규모의 사치’라 말하는 하디드. ‘건축은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DDP에서도 통하는 듯싶었다.

글=이도은 기자
사진=전호성 객원기자, 서울디자인재단

[사진설명]

1 마치 우주선처럼 미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DDP 외관. 4만여 장의 알루미늄판으로 감싸는 최첨단 기술로 지어졌다.
2 내부 조명이 밖으로 투사되는 DDP 야경.
3 DDP의 전시관 역시 비정형의 특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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