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독경제가 주는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오일·쇼크」이후의 국제「인플레」속에서 물가상승률을 10%안에서 억제할 수 있었던 선진국은 오직 서독뿐이다.
왜 서독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각국이 계속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몇 차례의 평가절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인가. 해외의존도가 결코 낮지 않은 서독은 어찌해서 국제통화 및 무역위기가 있을 때마다 오히려 국제수지 및「마르크」대를 강화시킬 수 있었는가.
재후 경제우등생으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서독의 정책은 결코 오늘날 흔히 말하는 신 경제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쩌면 구태의연한 고전적인 이론에 충실했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서독은 제1차대전 후의 혹독한 「인플레」를 경험한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고 살려나가 2차대전후의 정책기조를 뭣보다도 물가안정에 두어 오늘날과 같은 성과를 올린 것이다.
「인플레」는 자산가치의 왜곡과 사회경제의 정상적 가치척도를 교란시켜 합리화의 기준율 무산시킴으로써 국민윤리를 뒤집어 놓는다는 경험을 서독은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불로소득·투기·사행심·부정부패 등 경제적 합리화의 윤리적 기준을 붕괴시키는 경제적 원인은 바로 「인플레」이기 때문에 이를 철저히 경계함으로써 근검·절약과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고 일한 만큼 보답된다는 사회풍조를 경제적으로 보증하는데 노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공업국임에도 불구하고 노사협조가 잘되고 영국과 같은 고질적인 파업현상이 서독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근로자에게 일방적으로 협조를 요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은 경영참가를 인정하고, 정부는 근로자 재산형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정부·기업·국민은 의심보다는 신뢰를, 비판보다는 협조와 참여의 풍토를 이루어 놓은 것이다.
국민적 합의에 따른 정책운영의 풍토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기조가 흔들리지 않았다는 정보도 서독이 경제적으로 우등생이 된 커다란 원인중의 하나라 하겠다.
서독에 있어서는 전후의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이론이 오늘날까지 큰 수정 없이 정책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행정지도나 계획의 강력한 집행보다는 시장경제의 기능을 신뢰하되 그것이 사회성을 벗어나는 것만 정책이 조정해 나간다는 정책관은 결국 정부가 만능이 아니라는 자각이며 국민적 참여와 다수의 창의성을 신뢰한다는 신념의 표현이다.
시장경제의 기능을 존중하고 국민적 합의 위에서 정책이 전개되는 풍토에서 기발한 정책이나, 획기적인 정책보완이 있을 수는 없다. 위선적인 것보다는 교과서적이고 전통적인 정책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가장 훌륭한 경제적성과를 실증할 수 있었다는 게 서독의 지혜였다고 하겠으며 이는 적어도 자유경제를 전제로 하는 우리로서도 깊이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우리는 후진성을 단 시일 안에 탈피키 위해 재정주도형의 의욕적인 경제를 시도함으로써 그 동안 양적 성장에 일단은 성공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경제적 합리화의 윤리적 기준을 크게 손상시킴으로써 불로소득, 투기, 사행, 부정부패라는 풍토병을 앓고있는 실정이며, 국민과 기업 그리고 정책은 지금 심각하게 이러한 부조화의 잡음에서 벗어나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서독의 경험과 교훈을 우리의 사정에 알맞게 참고하고 도입함으로써 우리의 경제체질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을 수는 없는가. 모두가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