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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백 주기 축제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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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4면

어떤 작가도 따르지 못할 탁월한 상상력으로 걸작의 동화작품 1백60여 편을 남겼으며 그로 해서 「덴마크」를 「동화의 왕국」으로 만든 「안데르센」의 1백 주기를 맞아 「덴마크」에서는 그의 기일인 4일을 전후해 각종 기념 행사로 떠들썩하다.
「오덴스」에 있는 「안데르센」박물관에는 매일1천5백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고 있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제1회 국제동화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보기 위해 「오덴스」의 2개 극장에는 요즘 매일 어린이와 어른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있다.
이 영화제에는 세계20개국에서 「안데르센」의 동화를 주제로 한 작품60편을 출품하고 있는데 「안데르센」의 작품 주인공인 인어 아가씨를 본뜬 금제와 은제의 인어 상이 수상 작품에 시상된다.
한편「덴마크」정부는 금년 중으로 「안데르센 박물관」을 증축, 「안데르센 도서관」·전시실·강의실을 포함한 대규모의 건물을 새로 짓는다.
「안데르센」은 1805년 「오덴스」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잘 알려진 대로 제화공이었으며 어머니는「알콜」중독의 세탁부 였다. 거기에다 할아버지는 정신 병자였으며 할머니는 병적인 거짓말쟁이였기 때문에 감수성이 예민했던 「한스」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1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는 재혼했으며 「한스」는 더 이상 이런 환경 속에서 견딜 수가 없어 14세 때 「명성을 얻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올라온다.
「코펜하겐」에서 가수·「댄서」·배우, 그리고 극작가로서 성공하겠다는 자기대로의 희망을 품고 왕정 극장에 들어가게 되나 이곳에서 별로 인정을 못 받은 그는 변성된 나이에 이르자 해고당한다.
그러나「천재는 그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발견된다」는 다행스런 법칙에 의해 왕정 극장의 한 연을 가진 「요나스·쿨린」에게 재능을 인정받고 「콜린」덕택에 「크펜하겐」대학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안데르센」의 작가로서의 「데뷔」는 1822년「윌리엄·크리스천·월터」(「크리스천」이라는 자기 이름에다 「셰익스피어」와 「스코트」의 이름을 보탰다)라는 필명으로 『젊은 시도들』을 발표하면서부터.
7년 후인 1829년 ETA 「호프만·스타일」의 도보 여행을 다룬 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은 그가 어린이를 위한 작품에 눈을 돌린 것은 30세가 넘어서 였다. 문득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을 써 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부싯깃통』 『공주와 콩』 『난장이「클라우스」와 거인「클라우스」』 『작은「이다」의 꽃들』등 4편을 연속으로 써냈다고 한다.
죽기 3년 전인 1872년까지 백68편의 동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모두 80여개 국어로 번역,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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