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원전의 유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BC167년」은 오늘의 감각으로는 환상 같기만 하다. 동양의 유구한 역사감각으로는 2천1백40년 전이라면 그나마 역사의 맥락이 닿는 것도 같다. 그러나 「성서시대」라고 생각하면 도무지 전설처럼 생각된다.
요즘 외신에 따르면 바로 이 무렵 중국인 남자의 유체가 한 고분에서 거의 완전한 상태로 발굴되었다. 전송사진을 보아도 정말 전설시대의 사람 같지는 않다. 시신이 온전한 채로 반듯이 누워있는 모습은 오히려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이 유체가 발굴된 곳은 중국대륙 중부의 호북성강능현 기남성 봉황산에 있는 고분. 이 지역은 춘추전국시대 초의 수도 「영도」였던 자리. BC278년 초가 환도하면서 여기는 폐허가 되고 말았다. 서한시대(전한)에 봉황산기슭은 묘지였다고 한다. 유체가 발굴된 묘는 봉황산 168호 고분.
유체의 주인공은 「오대부」(당시의 현관급)로 한문제13년(BC167년) 5월에 매장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외신은 그 유체의 외형이 거의 완전했으며 피부엔 탄력성이 있었다고 한다. 사지의 관절도 움직이며, 치아도 그대로 있었다. 해부의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뇌수도 거의 온전한 상태였으며 내장기도 역시 완전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중공에서는 72년에도 장사고분에서 한부인의 유체가 발굴된 일이 있었다. 시대로 보아 봉황산의 유체보다는 40년 후지만, 역시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분들이 발굴되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때때로 「미이라」형태의 유체가 있었지만 그것은 원형에서 많이 변질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선 장법에 있어서 중국과는 구별되는 것 같다. 우리 나라는 고래로 시신은 고스란히 흙으로 돌아가도록 사후조치를 했었다. 사람의 유체는 가장 빠른 경우엔 20일이면 백골이 되고 만다.
중국의 경우 장사고분의 부인유체나 이번 기남성의 남자유체를 보면 관이 철저하게 밀폐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유체는 공기와는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액체 속에 가라앉아 있다. 오랜 시간이 가면서 이 유체의 지방이 납화되어, 말하자면 시납상태로 보존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일본의 강호시대 고분에서도 볼 수 있었다. 또 유체는 액체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연부까지도 보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고분에선 숯과 수은 및 특수향료를 배합한 붉은 안료가 발견된다. 그것이 바로 신비의 열쇠 같다.
이번 기남성고분의 유체도 삼중의 관속에서 심홍색의 관액 10만㎖와 함께 들어있었다고 한다.
현대의학에 있어서 고작 1백년 남짓한 방부법의 역사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