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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30년…유행은 어떻게 변했나 -YWCA 강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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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름다와 지려는 여성들의 노력은 유행을 만들어 내고 유행은 그 시대의 감각과 경향을 반영해 준다. 서울YWCA는 15일 하오2시 해방후 30년동안의 머리와 옷차림의 변천을 돌아보는 강연회를 가졌다. 강사는 임형선(예림여자기술학교장) 최경자씨. 이들은 현재와 앞으로의 경향은 유행과 관계없는 개성미의 창조라고 결론지었다.

<머리모양의 변천(임형선)>
치렁치렁 땋아내린 댕기머리와 쪽찐 머리 사이에 소위 신여성들의 「숙발」이 나타난 것이 40년대초다.
(그림ⓛ) 이대는 생머리를 길게 늘어 뜨리는 것은 친상의 표시였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를 해야했다.
머리를 길게 늘어 뜨리기 시작한 해방직후에도 이것은 마찬가지. 끝 부분을 곱슬거리게 하거나 긴머리 전체에 나부끼는 듯한「컬」을 넣은「플래퍼·스타일」이 미 군함에 실려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림②)「옥시플」로 탈색시킨 노란 머리가 선보인 것도 이 때.
화장은 몹시 흰분화장에 반달모양으로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새빨갛게 칠했다. 「브러쉬」등이 없던 때여서 윤곽을 그리려면 탈지면을 비벼 꼬은 것으로 매우 공들여 그려야 했다.
45∼50년 사이에「퍼머너트」가 등장한 것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이 때는 지금처럼 약으로만 하는「콜드·퍼머」가 아니고 일본이나 미국에서 들여 온 약을 머리결에 발라 열을 가하는 열 「퍼머」였다.
처음에는 40「와트」의 전구24개로 머리에 가열하는 방법이었으니 전기다리미 3개를 머리에 얹고 있는 셈이다. 미군정청이 전기절약을 위해 이를 금지한 후에는 숯「퍼머」(카본·퍼머)로 대체했다.
전기대신 숯을「롤」에 넣어 머리를 뜨겁게 하는 방법이었는데 머리가 타서 부스러지거나 「퍼머」를 하는동안 눈을 감고 조바심을 해야하는 웃지못할 광경도 많았다.
50∼53년은 피난지 부산의 일부계층에 앞에만「웨이브」를 넣은 트레머리(그림③)나 머리전체가 마구 꼽슬거리는「푸들」형 (그림④)이 유행하다가 60년까지 차차「헵번·스타일」(그림⑤)등 간편한 모양으로 정리되어 갔다.
60∼65년은「로키드」형등 높은 뒷 머리가 등장했고 67년이후 량감이 줄어 들면서 70년이후는「셰기·컷」「3단컷」단발변형등이 폭넓게 응용되며 누구나 자기취향에 맞는 모양을 선택하여 소화하고 있는 편이다.
결국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과 개성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며 특별히 유행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다.

<옷차림의 변천(최경자)>
45년전후에는 일제의 정책에 따라 바지밑등에 고무줄을 넣은「몸빼」를 저고리나 「블라우스」에 받쳐 입었다. 해방과 더불어 세칭「국제부인」들이 양장을 애용하게 되자 양장 「패션」이 크게 소개되었으며 긴치마와 「블라우스」, 어깨에「패드」를 넣은 군복「스타일」상의가 함께 등장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한복 특히「빌로도」치마가 크게 유행, 사치배격「캠페인」이 벌어지기 도.
머리와 옷의 모양은 따라 다니게 마련이어서 50년대에는 「헵번·스타일」의 머리와 함께 꼭끼는 바지(속칭「맘보」바지) 와 「블라우스」차림이 거리를 누볐다.
한편 목이나 등이 깊게 펜 옷들이 유행하여 가슴과 허리의 굴곡을 드러낸 여학생복이 「풍기문란가능」을 이유로 열띤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50년대말에는 자두모양의「색·드레스」.
60년대에 들어서 「크리스티앙·디오르」의 「알파벳·라인}이 게계를 휩쓸자 우리나라에도 「A라인」「H라인」「프린세스·라인」등이 「미니」와 함께 나타났는데 유행의 수명이 가장 긴 것은 역시 「미니」와 「판탈롱」.
유행의 중심이 젊은 세대로 옮겨져 활동에 편리한 시대감각에 맞기 때문이다. 최근의 「블루진」작업복의 유행도 개성을 보다 강조하고 남을 덜 의식하는 건전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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