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모자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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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72년에 「아이티」 혈액은행 사건이 일어나 세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미국의 한 상사가 「아이티」 정부의 내무장관과 짜고 매월 6천ℓ씩이나 원주민의 피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란 것은 미국에서는 ℓ당 30「달러」가 넘는 혈액을 3「달러」씩에 사들였다는 사실이었다.
그후 「아이티」 혈액은행은 폐쇄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피의 상인』의 손은 「아시아」 「아프리카」에까지 뻗치고 있다는 얘기다. 못사는 나라에서는 피는 얼마든지 싸게 살 수 있다. 그런 싼 피가 선진국에서는 10배 이상으로 팔린다. 혈액상인들이 개발도상국에 몰리는 것도 당연하다.
「유엔」의 통계에 의하면 현재 세계의 수혈용 혈액의 수요는 해마다 10%씩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헌혈자의 수는 6%씩 밖에 늘지 않는다. 피의 절대량의 부족이 해마다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값도 오르기 마련이다.
더우기 선진국에서는 혈액은행의 관리가 매우 엄격하다. 같은 수혈자가 주에 몇 번씩이나 피를 팔게 하지도 않는다. 아무 피나 다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매혈자중에는 간염을 전염시키는 「비루스」 보균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B형 간염의 「비루수」는 검사로 알아내지만, C형은 알아내지 못한다. 『비위생적인 지역 주민의 C형 「비루스」 보유율은 선진국의 10배나 된다고 「프랑스」 국립 수혈「센터」는 밝히고 있다. 이래서 일전에도 「프랑스·솨르」지는 『본래 혈액은 영양이 좋은 선진국에서 오히려 개발도상국에 보내야 한다』고 사설에서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에 이르러 피가 부족해졌다. 피의 상인에 의한 혈액수출 때문에서가 아니다. 매혈자·헌혈자가 줄어든 때문이다.
그동안 수요 공급원은 사설 혈액원들이었다. 그게 지난 6월에 일어난 오염혈액 사건으로 대부분이 문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설 혈액원의 혈액관리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매혈자의 피 자체가 문제가 된다. 미국에서도 매혈을 수혈 받은 환자는 헌혈을 받은 사람보다 10배나 더 많이 간염에 감염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소에서는 피의 공급을 늘리기 위해 피값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중이라 한다. 이렇게 해서 매혈자의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헌혈자를 늘리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헌혈의 경험자는 20%에 지나지 않으니 혈액공급을 위해 「혈액세」 제도를 마련하면 어떻겠는가. 이렇게 「프랑스·솨르」지는 제창하기도 했다. 더러운 피가 아무리 많아도 소용은 없다. 깨끗한 피라야 하는 것이다. 결국 고운 마음씨가 여기서도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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