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공동성명 3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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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일은 민족의 여망을 걸었던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지 세돌 되는 날이다.
이 역사적 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5천만 한민족은 감격과 기대로 조국이 통일될 내일의 희망에 부풀었었다.
그러나 자주·평화·민족의 대단합이란 그때의 정신은 3년이 지난 오늘의 남북한 관계에선 흔적마저 사라진 것 같다.
7·4성명은 이 3대 원칙의 발전을 위해 서로 중상·비방과 무력도발의 중지, 제반교류의 실시 등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렇듯 희망에 찬 약속은 얼마 안지나 무참히도 깨어졌다.
오늘의 현실은 불행히도 자주·평화통일의 희망보다는 좌절이, 긴장의 완화 아닌 격화가, 민족의 대단합이 아닌 분열이 우리민족을 괴롭히고 있다.
지금 한반도에는 6·25이후 최대의 위기가 감돌고 있다. 명맥이나마 유지되었던 남북대화의 「채늘」마저 북괴에 의해 봉쇄될 위험에 처해 있다.
7·4공동성명 정신의 이 같은 파기는 북괴측이 모든 합의사항을 난폭하게 유린한데 있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처음부터 북한공산주의자들은 남북대화를 평화와 통일 및 민족적 단합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른바 협상전략·심리전의 도구로만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얻지 못한 것을 협상의 「테이블」에서 얻어내려고 광분했다.
그것은 그들이 단계적인 남북교류·성묘방문·이산가족면회·노부모 찾기운동 등 우리의 합리적인 제의는 하나같이 모두 묵살하고, 소위 조건·환경개선론을 들어 외군철수·반공법·보안법 폐지 등에만 열을 올린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더우기 최근 발각된 휴전선 땅굴을 바로 7·4성명 직후에 파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7·4성명마저 적화통일을 위한 위장평화 공세로 이용했음을 입증해 준다.
그들의 통일 기본전략이 『폭력 혁명을 통한 적화통일』에 있는 한 남북대화가 지금과 같은 교착상태에 빠질 것은 충분히 예측되던 일이다.
왜냐하면 평화를 통해 목적하던 「남조선혁명」분위기 고조가 어렵다고 판단될 때 그들이 합의사항을 폐리처럼 내버릴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사실 남북대화를 해보니 그들이 노리던 목적을 달성하기는 커녕 그들 체제의 헛점만이 드러나게 됐던 것이다.
그들의 무모한 정치선전은 남한국민들의 반공태세만을 오히려 강화했고, 주한미군의 축출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남북한 대표와 기자들의 교류를 통해 남한의 발전된 면이 부각되고 북한의 낙후된 면만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평화통일을 지향한 남북대화를 촉진하면서 군사력 증강과 전쟁준비란 명분으로 북한주민을 억압 통제하는 이율배반적 양면 전술이 한계에 도달했던 것 같다.
별 진전이 없던 남북대화를 일방적으로 중단한 73년8월28일의 북괴 김영주 성명은 이러한 사정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해 10월28일 김일성은 평양의 군중대회에서 남북대화를 사실상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으며, 그후 북괴는 별의 별 트집을 잡아 남북회담을 형해화 하는 한편 폭력혁명 노선을 가속화해 왔다.
앞으로 상당기간 지금과 같은 남북의 긴장상태가 개선되거나 해소될 전망은 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마저 남북대화의 재개와 긴장완화를 통한 평화정착의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다만 북괴의 혁명노선 포기와 대화에의 복귀는 내외적 힘의 여건이 이를 강요할 때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무엇보다도 북괴를 압도할 힘의 배양에 힘쓰면서 그러한 여건의 성숙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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