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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중앙은행 매뉴얼 - 금기를 넘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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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호 22면

올해 2월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설립 100주년이 되었다. 그리고 벤 버냉키 의장이 재닛 옐런 부의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는 2006년 2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처음 지명되고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연임되었는데, 설립 후 100년간 미 연준이 공급한 본원 통화 3.8조 달러 중 78.4%를 재임 중 쏟아부었다.

맨 얼굴의 경제 ⑨ 꿩 잡은 매, 벤 버냉키

글로벌 위기 6년째인 올해 정작 진앙지인 미국은 링거에 해당하는 양적완화를 축소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나 유럽은 터널 속에 있고, 아르헨티나·터키 등 마치 위기가 새로이 시작되는 듯한 조짐을 보이는 나라도 있다. 버냉키는 갈채를 받으며 무대 뒤편으로 물러났다.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아마 그를 임명한 두 명의 미국 대통령보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조자룡이 헌 칼 쓰듯’ 휘둘러버린 ‘황야의 무법자’ 버냉키를 더욱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그를 왜 ‘무법자’라 칭하는가. 규모와 방식 모든 면에서 전통과 금기를 깨뜨리고 중앙은행 매뉴얼을 다시 썼기 때문이다. 수도권 전역이 화염에 휩싸였다고 누가 감히 팔당댐을 터뜨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렇게 했다. 양적으로 무지막지했을 뿐 아니라 방법론에서도 파격이었다. 미 연준은 설립 이후 줄곧 ‘bills only doctrine’을 고수해 왔다. 신용위험이 없는 재무성증권(treasury bill), 그것도 단기물을 대상으로 공개시장 조작을 행한다는 뜻이다.

미 연준의 목표는 적정 성장률 달성(또는 고용 증진) 및 물가안정이다. 성장을 통해 고용을 늘리려면 투자가 일어나야 하는데 장기금리가 그 결정 변수다. 장기금리를 직접 조작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적당한 단기금리의 수준을 운용 목표로 정해 시장조작을 한다. 그런데 버냉키의 연준은 장기채권을 대규모로 사들여 장기금리를 직접적으로 낮추어 버렸다. 이것이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다.

더 나아가 미 연준은 모기지채권·상업어음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매입했다. 특히 초기에는 발권력을 동원해 거의 대다수 은행의 주식에 투자하기도 했다. 국제결제은행(BIS) 규제에 의해 은행은 자본의 일정 배수만을 대출할 수 있으므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 은행이 일제히 대출 회수에 나서고 그 결과로 공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해 억지로라도 자본을 늘려준 것이다. 미적거리다가 인출 사태라도 일어나면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를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버냉키를 흔히 ‘헬리콥터 벤’이라 부르는데 이는 그가 통화를 대량으로 무차별 살포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대체로 보수적이다. 하지만 버냉키는 대공황을 전공했기에 과감하게 나설 수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대출 수요가 줄어들자 은행이 이에 맞추어 유동성 공급을 줄이는 바람에 사태가 더욱 악화됐다는 게 지금의 통설이다.

노벨상 수상자이고 대표적인 케인지안인 토빈은 단순화시킨 가설모형으로 경제를 분석하는 것은 위험하며 실제 상황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버냉키의 후임 재닛 옐런의 박사학위 지도교수가 바로 토빈이다. 신임 옐런 의장 역시 현학적이고 교조적인 틀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통화정책, 특히 유동성 공급과 관련해 버냉키의 대척점에 있는 의장은 폴 볼커다. 그는 79년 8월~87년 8월까지 재임했다. 그리고 볼커와 버냉키 사이에는 18년5개월을 재임한 앨런 그린스펀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세 사람이 연준 의장을 할 동안 미국의 대통령은 6명이 있었다. 참고로 동 기간 중 한국에는 7명의 대통령과 13명의 한은 총재가 있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볼커는 사상 유례가 없는 긴축정책을 통해 인플레를 종식시켰다. <그림>에서 보면 볼커 시대에는 은행 간 콜금리에 해당하는 연방기금금리가 맨해튼의 마천루처럼 솟아 있고, 최근에는 허드슨 강처럼 바닥에 붙어 있다. 볼커를 지명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긴축의 여파로 재선에 실패했고, 본능적으로 경기부양책을 선호하게 마련인 행정부에 어깃장을 놓는 것이 중앙은행 본연의 자세라는 교시를 남겼다.

볼커는 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선언한 금태환 정지를 재무성 관료로서 성안한 사람이다. 이로써 브레턴우즈 체제는 알맹이가 빠졌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미 달러화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물가가 불안해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금본위제로 회귀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그렇게 되면 미국의 경제와 위상이 크게 추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볼커의 고금리 정책이 미국의 중산층과 제조업을 황폐화시키고 80년대에 일본의 자동차와 가전제품이 미국시장을 휩쓰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미국의 세계통화 주도권이 흔들렸다면 미국 경제는 오늘의 위상에 이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볼커와 버냉키는 서로 정반대의 극단을 추구해 정책 효과를 보았지만 그 과정에서 같은 요인으로 인한 애로를 겪었다. 바로 글로벌 개방경제다. 볼커 시대에는 미국의 고금리를 좇아 유로 달러가 유입되어 긴축정책을 상쇄했으며, 이번에는 자금이 신흥국으로 빠져나가 정책 효과를 감소시켰다. 이에 따라 더욱 강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부작용이 커지기도 했다. 앞으로 과다 공급한 통화의 회수 과정에서도 세계화는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80년대 긴축정책의 부작용이 미국의 산업경쟁력을 감퇴시키고 그 반사적 이익을 향유하던 일본을 향해 85년 플라자 합의가 발동되었다면, 버냉키의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물이 빠져나가면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 워런 버핏의 말처럼 신흥국 금융시장은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자 요동 치고 있다. 미국이 통화를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 개방했던 수문을 조금씩 닫고 있는데 불과하며, 여전히 평소에 비해 몇 배의 신규 통화를 공급하고 있는데도 이러하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볼커 시대 이후에는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고와 미국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저유가 정책으로 우리는 86~88년에 이른바 ‘3저 호황’을 맞았다. 그렇다면 버냉키 시대 이후에는 어떨까.

리먼 파산 이후 미 연준이 본원통화를 네 배로 만드는 동안 수시입출식 예금인 MI은 1.44조 달러에서 2.72조 달러로 약 두 배로 증가했고, 저축성 예금을 포함하는 M2는 7.79조 달러에서 11.05조 달러로 40% 남짓 증가하는 데 그쳤다. 화폐의 유통속도가 떨어진 것이고 잉여유동성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달러뿐 아니라 유로 등 세계의 통화가 계속 대량으로 방출되고 있다. 세계 경제는 이 잉여유동성의 향방에 따라 롤러코스트를 탈 것이며, 취약한 지역의 위기는 순식간에 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 한국의 중앙은행이 어떤 묘수로 꿩 잡는 매가 돼 난국을 수습할지 자못 궁금하다.



최범수 예일대 경제학 박사. 전 KDI 연구위원.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자문관으로 금융 구조조정을 기획했다. 최근 KCB 사장으로 내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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