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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상조정신 법이 뒷받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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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래 여성을 차별하던 대부분의 법률이 개정되었으나 가정생활을 규율하는 가족법만은 아직도 많은 차별규정을 두고있다. 현행 가족법은 1957년에 통과되어 1960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오늘의 가족법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여성에 대한 대우가 향상된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부부·부모·호주와 가족사이에 남녀를 차별하고 있는 점이 많다. 그 중에서도 상속에 관한 법률에서는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있다.
그 예로서 호주상속에 있어서 딸보다는 아들이, 그 중에서도 장남이 우선 상속인이 되고 아들이 없으면 손자로 이어진다. 재산상속에 있어서는 가령 남편이 사망한 때에는 아내는 아들·딸과 함께 상속을 받게되는데 그 가운데서 호주상속을 하는 장남은 원래 아들로서 받는 자기 몫에다 반 몫을 더해서 받게되고, 둘째아들, 세째아들은 각기 한몫씩 받게되며 아내와 딸은 둘째아들 몫의 반 몫씩을 각기 받게되는데 그것도 시집간 딸이나 분가한 딸 또는 양자로 간 딸들은 4분의1로 줄어들게 되어있다. 예를 들면 아들들이 모두 1백만원씩 받게되는 경우라면 장남은 1백50만원, 아내와 딸은 50만원씩 받으며 시집간 딸은 25만원을 받게된다.
이러한 규정은 아내의 권리를 약화한 것으로 미망인으로서 아버지 없는 자녀를 앞으로 양육해야할 어머니의 처지에서 볼 때 더욱 불리하고 딱한 일이다. 비록 그 재산이 사망당시 남편의 소유라 할지라도 결혼해서 평생동안 함께 살면서 그 재산을 모으는데 유형무형의 공헌을 한 아내의 노력은 전혀 계산되지 않았다. 이는 심히 부당하고 불합리한 일이다. 얼마전 상담소에 한 여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전처의 어린 세 자녀가 있는 사람과 결혼했다. 결혼 후 20년이상 맞벌이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으나 모두 남편명의로 해놓았었다. 남편이 사망하자 전처자식 세 사람에게 대부분의 재산이 상속되고 불과 자기에겐 전 재산의 6분의1정도밖에 돌아오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억울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법적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한편 아내는 아들·딸이 없는 경우 시부모가 있을 때에는 그들과 함께 상속을 받아야하고 시부모가 없을 때에만 단독으로 상속받게 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남편은 아내가 사망하면 그 자녀들과 함께 재산상속을 받지만 자녀가 없으면 장인·장모가 있더라도 이들과 상각관없이 아내의 전 재산을 단독으로 상속받게 된다. 이는 남편과 아내, 시집과 친정, 아들과 딸을 노골적으로 차별한 규정이다. 칠순의 노부부의 호소가 있었다.
이들은 평생동안 애써 모은 재산이 졸지에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늦게 얻은 일점혈육 무남독녀를 대학까지 졸업시켰고 재산을 딸의 명의로 해주었다. 그러나 결혼하던 다음해 딸은 출산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젊었을 때부터 막벌이로 모은 재산을 법적으로만 처리하겠다는 사위 앞에 이 노부부는 어찌해야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법이 사망한 아내의 전 재산을 남편(사위)에게 단독 상속하도록 하고있지 않은가!
아내에게 시부모와 함께 상속하게 해야할 규정이 필요하다면 남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할 것이다. 이러한 상속제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일본에서는 남편이나 아내나 똑같이 자녀가 없으면 부모와, 부모가 없으면 형제자매와 함께 상속하고 형제자매도 없을 때는 단독상속인이 된다.
독일에서는 자녀가 없을 때는 남편·아내 모두 부모와 함께 상속하고 부모도 없을 때는 단독으로 상속한다. 이는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또한 영국에서는 배우자면 남편이나 아내 모두 자녀나 부모에 우선하여 상속인이 되고 유산이 일정한 액수이상일 때에 한해서만 자녀나 부모와 공동상속을 한다. 미국은 주마다 약간씩 다르나 대개 배우자는 자녀보다도 앞서 상속인이 되고 그 몫에 있어서도 아내로서의 특별상속분을 우선적으로 취득한 후 나머지 재산에 대해서 자녀나 부모와 공동 상속하도록 하고있다.
우리는 이처럼 선진적인 배려는 못할지언정 딸이기 때문에 아들보다, 아내이기 때문에 남편보다 차별대우를 받아야하며 거기에다 태어난 순서에 따라, 시집을 갔는가 안 갔는가에 따라 이중으로 차별하는 따위는 없애야 하겠다. 수년 전부터 가족법개정을 주장해왔다.
이번에 제출된 개정안은 꼭 통과되어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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