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사모하는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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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임진왜란 후 지난 모든 일들을 깊이 반성하면서 기록되었다고 하는 우리 나라의 고전 『징비록』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국가가 유지되는 것은 오직 인심에 있느니라. 비록 위태롭고 곤란한 시기라도 인심이 굳게 뭉치면 국가는 평안하고 인심이 이산되면 국가는 위태롭다』.
위기에 처하여 있는 민족과 나라를 구원하는 길은 모든 인심이 한데 뭉쳐 일심 협력하여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쓰라린 체험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본다. 우리는 한데 뭉쳐야 한다. 그런데 죄악으로 부패한 마음들은 한데 뭉쳐질 수 없다. 「썩은 흙으로는 담장을 칠 수 없고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썩은 흙은 비록 쌓아 올릴지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겠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같지만 한 나라도 그 나라가 바로 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썩은 것이 없어야 한다. 썩은 기초 위에 이루어진 것은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사회악을 말하고 제도의 잘못을 말하지만 부패와 죄악은 근원적으로는 마음의 문제다. 사람의 마음이 썩기에 사회가 썩는다.
결국 인간 사회는 마음이 문제다. 사람의 마음이 썩으면 개인의 인격도 가정도 국가도 썩을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마침내 썩어진 나무에 좀이 드는 것 같이 썩은 나라는 외부의 침략을 받게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들이 죄악으로 깊이 물들면 그러한 나라는 잘 되기를 바랄 수 없다. 성경에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교훈이 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죄악으로 차 넘치는가.
그렇다고 우리는 실망해야 할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사회가 의롭지 못하다고 해서 낙방할 수만은 없다.
「그리스도」의 말씀 중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역설적인 말이지마는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그 사회와 그 개인이 의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의롭지 못하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 아닌가.
귀한 것은 의롭다는 그 행실이 아니라 의로움을 사모하는 마음이다. 의롭게 살고 싶기는 하나 스스로 의롭지 못함을 탄식하며 슬퍼하는 그 마음이 귀하다. 그런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진정 슬퍼할 것은 우리가 다 의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의를 사모하고 마음이 점점 식어져 가는 그것이다. 죄악을 보고 슬퍼하는 그 마음이 식어져 가는 그것이 슬픈 일이다.
사회의 모든 부조리와 죄악을 보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며 슬피 우시던 「그리스도」의 그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죄악과 부조리를 책망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그것을 탄식하여 슬퍼하는 마음이다.
정당과 정당이 팽팽히 맞서 싸우고 학생과 경찰이 서로 돌을 던지고 교회와 정부가 서로 경계하고 논쟁하는 이런 일들을 볼 때 잘한다고 손뼉을 치며 「쾌재」를 부르는 자가 있다면 그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서로 힘을 모아야겠는데, 서로 화해하고 서로 협력해야겠는데 이럴 수가 있는 가고 탄식하며 슬퍼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분명 희망은 있다.
귀한 것은 뭉쳐야겠다는 마음과 화해하여야겠다는 마음이다. 비록 의롭지 못해도 의롭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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