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식 콕콕 찍어 투자하는 조세피난처 그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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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케이맨 제도나 버뮤다 같은 조세피난처 투자자들이 ‘족집게 투자’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들이 사면 주가가 오른다는 말이다. 투자 대상 기업과 관련된 ‘검은 머리 외국인’(외국인을 가장한 내국인 투자자)일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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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원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가 2005년 8월~2009년 8월 조세피난처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한 코스피 상장 581개 종목을 분석한 결과다.

 양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정한 조세피난처 35개국 가운데 코스피 투자량이 많은 상위 30개국에 포함된 5개 지역(케이맨 제도·버뮤다·바하마, 미국령 및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5년간 거래 내역을 모았다. 그런 뒤 이들 지역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 상위 20%에서부터 하위 20%까지 총 5개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모의투자를 했다.

그 결과 상위 20% 종목의 수익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상위 20% 종목으로 투자했을 경우 일주일간의 수익률이 0.74%였으나 하위 20% 종목에 투자한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은 0.35%에 불과했다. 조세피난처 외국인들이 많이 사들인 종목의 주가가 더 올랐다는 의미다.

 또 하위 20% 종목을 공매도하고 거기서 얻은 수익금으로 상위 20% 종목을 사들이는 전략을 쓸 경우 자기 자본 투자 없이 한 달에 5.6%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 팔았다가 되사 차익을 얻는 투자기법이다. 양 교수는 “조세피난처 외국인이 많이 사는 종목은 주가가 오르고 덜 사는 종목은 떨어진다는 뜻으로 그만큼 이들의 국내 주가에 대한 예측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이런 분석 결과를 토대로 “한국인들이 조세피난처를 통해 외국인으로 가장해 코스피 주식을 거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조세피난처 투자자는 세제 혜택 등을 노리고 현지에 법인을 설립한 국내 기업 관계자이거나 헤지펀드 같은 외국인 투자자”라며 “후자의 경우 개별 종목에 대한 예측력보다 시장 전체에 대한 예측력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스피에서 종목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조세피난처 투자자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가 조세피난처의 투자자들을 해당 기업과 관련된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의심하는 데엔 이유가 더 있다.

외국인 지분이 낮은 종목에서 조세피난처를 통한 외국인 투자의 주가 예측력이 더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종목이 아닌 낮은 종목일수록 오히려 주가 예측력이 높다는 점은 한국 기업 내부인일 수 있다는 의심을 키운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분석 기간을 연 단위로 쪼개서도 분석을 시도했다. 분석 기간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포함돼 있어 전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간 분석 결과도 마찬가지로 4개년 모두 상위 20% 종목에 투자한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이 하위 20% 종목에 투자한 포트폴리오보다 높게 나타났다.

정선언 기자

◆조세피난처=법인세나 개인소득세 같은 세금이 아예 없거나 과세하더라도 15% 미만의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등 세제상 특혜를 제공하는 국가나 지역. 케이맨 제도의 경우 인구 5만 명의 작은 섬이지만 등록된 기업만 10만 개가 넘는다. 대부분 실체 없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다. 지난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조세피난처에 재산을 숨겨온 사람들의 목록을 공개했는데, 버진아일랜드에 금융계좌나 페이퍼 컴퍼니를 갖고 있는 한국인만 70여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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