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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최후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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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제는 미국인의 가슴 위에 상처를 씻는 손을 얹을 때다』-.「포드」대통령이 이렇게 연설한지 3일만에 미국대사관은「사이공」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미국으로서는 역사상 지금보다 더 가슴 아픈 적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사가「우드워드」는 54년에 내놓은 책 <미국사의 특이성>에서 이렇게 지적한 적이 있다. 곧 미국정신은『승리의 전설』과『결백의 환상』이라는 두 특성 위에 지탱되어 있었다고.
그 두개의 특성이 이제 한꺼번에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미국 독립 2백주년을 기념하는 거창하고도 자랑스러운 행사가 시작된 올해에 말이다.
그러나 미국사람들이 받은 가슴의 상처는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의 영광에 금이 갔을 뿐이다. 「사이공」시민들에게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다.
이미 지난주에 미 상원이 인수한 비밀보고서에는 「사이공」의 함락은 5월1일에도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한 서구외교관은 2차대전말 연합군이 노도와 같이「베를린」시에 육박하던 것과도 같다고 사태를 평가했다.
한 주먹의 일인 특파원과「프랑스」기자들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이 철수한「사이공」에는 걷잡을 수 없는 종말 감이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사이공」시민들에겐 지금 얼마 남지 않은 최후의 시간을 헤아리는 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사이공」의 한 장군이 말했다.『될 대로 되어라』- 이게 병사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지난 27일엔 한 월남 기가「사이공」시내에 폭탄을 던졌다고 자포자기의 표현으로밖에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심한 공포나 절망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생을 잃게 된다. 그리고 당장에 눈에 띄는 대상에게 증오를 퍼붓는다.
「사이공」을 철수하는 미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다름 아닌 월남병사들의「보복」행위였다.「베트콩」이「사이공」의 포격사정 권내로 육박한 지금「사이공」은 거리마다 인파가 붐비고 있다고 한다.
물론「아오자이」의 아름다운 옷자락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출구 없는 출구를 찾아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하는 군중의 지치고 허탈감에 찬 표석들뿐이다. 그들이 언제 눈먼 폭도들로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뿐이오,「사이공」시는 또다시 조용해질 것이다. -죽음처럼.
워낙 오랜 전화에 시달린 사람들이다. 허탈한 마음으로 체념에 잠기기도 쉬울 것이다.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이란 두 보의 시가 있다. 아무리 모든 것이 사라졌어도, 사람 하나 없어도 꽃은 피고 새는 지저귈 것이다.
아무리 나라는 망했다 해도, 아무리 꽃은 없어도「사이공」의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갈 것이다. 살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또 꽃이 필지도 모른다. 아마 이런 심정에서「사이공」사람들은 최후의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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