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스런 생명력의 제주 해녀 … 유네스코 등재 일본 앞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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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현대적인 잠수 장비를 갖춘 제주 해녀. 특유의 검은색 잠수복, 오리발을 착용하고 왼손에 수산물을 작업 도중 보관하는 테왁망사리를 들고 있다. 이들 장비는 1970년을 전후해 보급됐다. [중앙포토]

한국 단독 등재냐, 아니면 일본과의 공동 등재냐. 정부가 올해 제주도 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일본 해녀인 ‘아마(海女)’의 등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진도는 한국이 빠르다. 2007년부터 등재를 추진했다. 이달 말까지인 제출 기한을 지켜 신청서를 낼 계획이다. 지난달 초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을 찾은 유네스코의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에게 ‘해녀 등재’를 특별히 부탁하기도 했다.

 반면 일본은 뒤늦게 뛰어들었다. 이달 안에 신청서를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는 국가 문화유산으로 먼저 등록해야 하는데, 아직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어서다.

 일정대로라면 제주 해녀의 등재 여부는 내년 말 유네스코 정부간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문제는 일본이 해녀와 아마 문화의 유사성을 내세워 유네스코를 상대로 여론전을 펼칠 경우다. 내년 3월까지 일단 등재신청을 한 후 한·일 공동등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 해녀 등재 신청서 작성 작업에 참여한 외국어대 박상미(국제학부) 교수는 “그런 여론전이 먹혀 우리 해녀의 등재 결정이 한 해 미뤄져 2016년에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복장의 일본 아마. 흰색 잠수복 이소기를 입고 부력기구인 이소오케를 잡고 있다. 이소오케는 한마디로 나무광주리다. 아마는 이소오케와 연결된 줄을 자신의 허리에 묶은 채 잠수했다. [중앙포토]

 그럴 경우 관건은 유네스코 심사위원들이 제주 해녀와 일본 아마의 유사성, 차이점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다. 둘은 얼마나 비슷한가. 혹은 다른가.

 역사적으로 한국 해녀의 존재는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 진주를 캤다는 기록이 있다. 잠수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중국 진수(陳壽·233∼297)가 쓴 역사서 『삼국지』에는 3세기 일본에서 바다 깊은곳 수산물 채취 기록이 있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직업적 해녀의 출현은 1900년대 초반이다.(『제주 해녀와 일본의 아마』·민속원) 하지만 임금·작업효율 면에서 아마보다 제주 해녀가 월등했다. 일제 치하 아마가 먼저 조선에 진출했지만 결국 제주 해녀의 일본 진출이 본격화됐다.

 장비·복장은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은 테왁, 일본은 이소오케(磯桶)라는 부력 유지 기구가 있다. 작업 도중 올라타 쉬기도 하고 채취한 수산물을 물에 뛰워 보관하는 기능을 한다.

 해녀 전문가 한림화씨는 “물질 방법이 결정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일본의 ‘후나도(舟人)’ 물질은 배를 타고 나가 아마가 물속 작업을 마치면 배 위의 남성이 생명줄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남성도 아마 문화의 한 부분인 것이다.

 제주도 해녀는 철저히 여성 문화다. 과거 남성도 물질에 참여했었다. 하지만 조선 조정의 과도한 수산물 진상(進上) 요구를 견디다 못해 차츰 사라졌다. 결국 물질 기술에 따라 상·중·하군으로 위계질서가 나뉘는 잠녀회가 자리잡았고, 여성에게는 버거운 노동의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각종 해녀 노래가 발달했다. 1932년 해녀들이 일제의 수탈에 반발해 집단 투쟁에 나섰던 것도 잡초 같은 생명력 때문이었다. 일본 아마에는 없는 문화다.

 박상미 교수는 “제주 해녀의 억척스런 여성성을 강조해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기 때문에 내년 말 등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주 해녀가 먼저 등재되면 일본 아마는 한국이 동의해줘야 추가로 공동등재할 수 있다. 그게 싫다면 제주 해녀와 다른 유산으로 느껴지도록 신청서를 작성하는 수밖에 없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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