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526> 재미있는 생선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익숙하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아는 게 별로 없을 때가 있다. 매번 밥상에 오르는 생선도 마찬가지. 그 이름의 유래나 제철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황선도(50·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전략사업실 연구위원)씨는 최근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는 책을 써 유명해진 ‘물고기 박사’다. 그를 만나 고등어를 비롯한 갖가지 생선 얘기를 들어봤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Q 1 전지현·공지영·박태환·김창완의 공통점은?

 모두 고등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 공지영은 1999년 『고등어』란 소설을 냈다. 소설에서 실제 고등어는 언급되지 않는다. 한때 팔팔한 고등어였으나 지금은 좌판에 깔린 고등어처럼 살고 있던 인물을 그리고 있다.

 ‘산울림’의 가수 김창완은 87년 ‘어머니와 고등어’를 발표했다. 지금도 애창되는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란 명곡이다.

 배우 전지현과 수영 선수 박태환은 고등어와 무슨 인연? 황선도 박사가 책에서 고등어를 “전지현 뺨치는 S라인”, “박태환과 비슷한 헤엄속도”라고 비유한 ‘인연’이다. 황선도 박사에게 궁금한 것들을 더 물어봤다.

 - 전지현·박태환을 고등어에 비유했는데.

 “사람은 여성의 S라인 몸매, 남성의 ‘식스팩’ 몸매를 알아주지만 생선은 헤엄치기에 적합한 유선형 몸매가 최고다. 헤엄칠 때 물이 소용돌이치지 않고 물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아서다. 고등어 몸매를 보면서 과거 ‘애니콜’ 광고에서 본 전지현이 떠올랐다.”

 - 고등어의 헤엄 속도는 박태환보다 황영조와 비교해야 맞지 않나.

 “고등어의 평균 시속은 3∼9㎞다. 마라톤 풀코스(42.195㎞)를 2시간대에 달리는 황영조보다는 느리다. 육상과는 달리 바다에선 물의 저항이 커서다. 물에서 1500m를 14분대에 헤엄치는 박태환과 비슷한 속도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2 고등어와 멸치의 공통점은?

 둘 다 머리에 ‘블랙박스’가 있다는 것이다.

 - 항공기나 자동차에 있는 그 블랙박스 말인가.

 “엄밀히 말하면 나무의 나이테 같은 것이다. 고등어·멸치·갈치·명태·조기처럼 단단한 뼈를 가진 모든 생선(경골어류)은 귀 속에 이석(耳石, otolith)이란 귓돌을 갖고 있다. 칼슘·단백질이 주성분인 뼈 같은 물질로 몸의 균형을 감지하는 평형기관의 역할을 한다. 이석을 쪼개거나 갈아서 단면을 보면 나무 나이테 같은 무늬가 있어 나이(연륜)를 알아낼 수 있다. 심지어 생일까지 말해주는 일일성장선(일륜)도 보인다.”

 - 굳이 생선 나이를 밝히려는 이유는.

 “수산 자원이 어느 곳에 어떤 종류가 얼마나 있는지 평가할 때 필수 자료가 생선의 나이와 체장(몸길이)이다. 생선의 성장을 추정할 때 체장으로만 계산하면 오차가 커서 나이를 정확하게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 이석 연구를 통해 드러난 장수 생선은?

 “뱀장어는 13년, 조피볼락(우럭)과 가자미는 8년, 고등어는 5년까지 생존하는 것을 확인했다.”

 - 멸치의 수명은?

 “2년 사는 사례도 봤다. 떼를 지어 다니는 멸치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여기는 것 같다. 작고 힘없는 멸치는 대가족을 이뤄 알을 많이 낳고 일찍 성숙해야 종(種)을 보전할 수 있어서다. 어민들은 이를 역이용한다. 어군탐지기를 이용해 멸치 떼를 발견한 뒤 그물을 던져 ‘한방’에 잡는다. 이때 멸치 입장에선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Q 3 홍어·꽁치·청어·명태·아귀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겨울이 제철이다.

 - 홍어를 ‘죽음을 뛰어넘는 지고지순 로맨스’의 상징으로 봤는데.

 “수홍어는 낚싯바늘을 물고 발버둥치는 암컷을 덮친다. 둘 다 낚싯줄에 끌려 올라오기도 한다. 그래서 암컷은 낚시, 수컷은 간음 탓에 죽는다는 말이 나왔다. 홍어는 철저한 일부일처(一夫一妻)주의자이므로 이들의 행위는 음란함이 아니라 ‘순애보’다. 암컷은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4∼6개의 알을 낳는다. 홍어는 암컷이 크고 맛이 뛰어나며 가격이 비싸다.”

 -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란 말이 있다.

 “홍어 수컷의 생식기는 꼬리 시작부위 양쪽으로 두 개가 툭 삐져나와 있다. 가시도 붙어 있다. 옛 뱃사람들은 생식기가 조업에 방해될 뿐만 아니라 가시에 손을 다칠 수도 있어 잡자마자 배 위에서 생식기를 칼로 쳐 제거했다. 홍어 거시기를 비하한 것은 이런 조업 행태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개인적으론 수컷의 생식기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란 점에서 그런 말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 ‘꽁치는 서리가 내려야 제 맛이 난다’는데.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꽁치는 전어처럼 계절에 따라 지방 함량이 달라진다. 10∼11월엔 지방 함량이 20% 정도를 차지한다.”

 - 과메기의 원료가 되는 생선은.

 “과메기는 원래 청어로 만들었다. 지금은 대개 꽁치로 만든다. 초겨울에 잡은 청어나 꽁치를 그늘에서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면 과메기가 만들어진다. 수산물을 말릴 때 날씨가 너무 추우면 살이 팍팍해져 맛이 떨어지고 따뜻하면 상해 버린다.”

 - 한동안 사라졌던 청어가 지난해 말엔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데.

 “영국 해양생물학자의 이름을 딴 ‘러셀 주기’란 가설이 있다. 해양 생물이 수십 년의 주기를 갖고 함께 변동하는 현상을 나타낸다. 30년대엔 플랑크톤과 청어가 감소하고 정어리가 증가했는데 60년대 말엔 정어리가 망하고 청어가 흥했다. 러셀 주기는 대양의 순환과 관계 있을 것으로 추측할 뿐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른다. 청어가 돌아오고 있다니 정어리 숫자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 명태는 현상수배를 해야 할 만큼 귀한 ‘생선님’이다.

 “명태는 동해에서 가장 어획량이 많았던 생선이다. 80년대 초반엔 15만 t까지 잡았다. 90년대에 1만여 t으로 급감했고 2008년엔 공식 어획량이 ‘0’이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인공 종묘를 생산해서라도 명태 자원을 회복시켜보려고 애를 썼지만 알을 받아낼 어미를 확보하기도 힘들었다. 할 수 없이 마리당 현 시가의 10배를 주겠다며 ‘현상수배’를 한 적도 있었다.”

 - 호프집에서 술안주로 나오는 ‘노가리’도 명태 아닌가?

 “노가리는 1년 정도 자란 작은 명태다. 또 다른 노가리는 농담(弄談)의 농자에 접미사 ‘가리’가 붙어 노가리가 됐다고 한다. 악의 없는 농 짓거리를 할 때 흔히 ‘노가리를 푼다’고 표현한다. 맥주 집에서 노가리 씹으며 노가리 푼다는 말장난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노가리가 어린 영계(?)로 맛은 있을지 몰라도 명태 자원이 사라진 요즘, 노가리를 잡아선 ‘아니·아니 아니 되오’다. 노가리가 자라서 알을 낳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황 박사에게 들은 얘기들이 술자리 노가리 감으론 딱인 것 같다.

 “내륙(대전) 출신이지만 해양수산 관련 직업을 가진 덕분에 바닷가로 일곱 번이나 이사하는 등 떠돌이 생활을 했다. 자연스럽게 고향과 멀어지고 친구들과도 교류하기 힘들었다. 어쩌다 서울에 올라가면 글쟁이 친구들을 만나 밤새 술 한잔 놓고 얘기하는 게 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주로 올라온 생선회를 놓고 풀어제낀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입담이 좌중을 압도했다. 그때부터 ‘황구라’란 별명을 얻었다. 문학계의 ‘황구라’라는 황석영 선생과도 술 한잔 나누며 얘기하고 싶다.”

 - 아귀가 ‘로토’인가. 인생역전으로 비유하게.

 “아귀는 물메기·곰치와 함께 못생긴 생선 ‘3총사’다. 과거엔 살이 물컹물컹하고 특별히 맛이 있는 생선이 아니어서 그물에 걸리면 바로 버렸다고 한다. 이때 아귀가 물에 떨어지면서 ‘텀벙’ 하고 소리가 난다고 하여 별명이 ‘물텀벙’이다. 그러나 지금은 웰빙식품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인생 역전’이다. 엄밀히 말하면 찾는 사람이 늘어나 어생(魚生) 입장에선 삶이 팍팍해진 셈이다. 아귀는 저지방 식품인 데다 콜라겐이 풍부해 건강에 이롭다.”

Q 4 고등어·명태·갈치·오징어의 공통점은?

 넷 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수산물이면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국내 소비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 요즘 회 먹어도 괜찮나?

 “방사능 오염은 내 전공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먹는다. 고등어 회피는 지나친 우려다. 심지어 노르웨이산 고등어의 판매까지 급감했다고 들었다. 명태도 회유 경로상 문제 될 것이 없다. 넙치·가자미·우럭 등 정착성 어류는 방사능과는 무관하다.”

 - 수산물의 수요가 줄었는데 횟집이나 마트에 가면 값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농산물처럼 유통이 문제인 것 같다.”

 그는 국내 수산자원은 고갈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해양 오염과 연안 간척 등 수산물의 서식처 소실과 치어를 포함한 무분별한 남획을 그 원인으로 진단했다.

 “바다의 수산자원은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인 올림픽 방식(race fishing)이기 때문에 남획이 지속되고 있다. 남을 위한 배려가 없다. 이제는 소극적인 관리보다 수산종묘 방류, 인공어초와 바다 목장 조성 등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할 때다.”

◆황선도 박사=1963년 대전 출생. 충남대 해양학과 졸업. 30년간 우리 바다에 사는 어류를 연구해 온 ‘물고기 박사’. 어릴 때 꿈은 탐험가였지만 바다 구경 한 번 못 해본 육지 촌놈이 해양학과에 진학하게 되면서 바다에 ‘풍덩’ 빠졌다. 고등어로 박사 학위도 받았다. 국립수산과학원을 거쳐 현재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근무 중이다.

독자와 함께 만듭니다  뉴스클립은 시사뉴스를 바탕으로 만드는 지식 창고이자 상식 백과사전입니다.
* 모아 두었습니다. www.joongang.co.kr에서 뉴스클립을 누르세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