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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들의 탈선 백태①] 여기자 신체 접촉하고 애정고백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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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주변에서 풍류깨나 즐기고 주당(酒黨) 소리를 듣던 검사들이 바짝 얼어붙었다. 검찰 수뇌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직 지청장이 술자리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하고, 자신과 사귀는 연예인을 위해 성형외과원장에게 공갈을 친 검사가 구속되는 등 일탈이 도를 넘어서면서 제 발 저린 검사들이 ‘셀프 금족령’을 내리고 주점 출입을 끊었다는 말도 들린다. 도대체 검사들의 술자리 문화와 사생활이 얼마나 문란하기에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 검사들이 속출할까? 검사들의 일탈 행태와 안하무인의 권력에 취한 검사들의 사생활을 취재했다.

검찰 창립 66년 만에 검사도(檢事道) 교육이 처음 시도될 정도로 검찰 조직이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은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장면 하나. 2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김상희 위원장, 법제사법위원회 박영선 위원장 등 내로라하는 여성 의원과 여성단체 회원들이 들어섰다.

이들은 “이진한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성폭력 사건을 엄중 처벌해 달라”며 이 검사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적힌 플래카드를 들어 진을 치고 있던 카메라 기자들 앞에 펼쳐 보였다. 선량(選良)들도 벌벌 떨게 만든다던 한 엘리트 검사의 명예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순간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이 지청장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12월 26일 출입기자단과 서초구 반포동의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가졌다.

통상적으로 지검의 차장검사는 일선 수사검사들로부터 수사상황을 보고받고 중요 사건의 경우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면서 막을 건 막고, 흘릴 것(정보)은 적당히 흘리면서 표정관리까지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 기업체로 치면 홍보실장 비슷하지만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서울중앙지검의 차장검사인 만큼 기자들조차 그 권위를 인정해주는 고참급 간부가 맡는다.

평소 근엄하던 차장검사와 출입기자들의 연말 송년회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잡혔으니 밥도 먹고 폭탄주도 한잔 걸치면서 서로 친해지자는 분위기로 흘러간 것은 당연했다. 20명의 기자와 폭탄주를 돌리던 이 차장검사가 너무 빨리 술에 취한 게 화근이었다. 이 검사는 기분 좋게 취하자 평소 자신이 좋은 느낌을 가졌던 여기자들에게 스킨십을 시도하며 친밀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송년회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이 차장 검사에게 포옹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당한 여성들은 신문사 여기자 A씨와 방송사 여기자 B씨 등 3명이었다. A씨의 경우 이 차장검사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머리를 기대자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이 차장검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A씨의 허리에 손을 얹고 수차례 등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이 차장검사는 또 A씨의 이름을 들먹이며 “내가 OOO 기자를 좋아한다”는 말도 했다. 자리를 옮겨서는 B씨의 손등을 잡고 “뽀뽀해도 되느냐?”고 말하며 추근거렸다고 한다.

당시 이 차장검사의 ‘진상’은 그쯤에서 그치지 않았다. 만취한 그는 밤 10시쯤 회식자리를 떠난 뒤에도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정상적인 남녀 사이라면 사람이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장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날마다 같은 건물에서 얼굴을 맞대는 사이일지라도 검사와 기자는 엄연히 직역(職域)이 다르고, 또 당시 A씨가 술에 취한 이 차장 검사의 말을 들을 때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불쾌해 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차장검사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다음날 오전에 기자실을 찾아와 “실수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이해해 달라”며 사태의 봉합을 시도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했다고 한다.

그러자 성추행을 당한 A씨 등은 대검찰청 감찰본부(본부장 이준호)에 이 검사에 대한 진상조사와 처벌을 요구했다. 이에 감찰본부는 이 차장과 피해여성 3명, 송년회 참석 기자 20명 가운데 11명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통화를 통해 진상조사를 벌이기에 이른다.

하지만 ‘가재는 게편’이었다. 감찰본부는 성추행 논란을 빚은 이 차장검사에 ‘감찰본부장 경고’라는 가벼운 처분을 내렸다. 검찰 복무규정에 따르면, 감찰본부 경고는 실질적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 조치다. 감찰위원회는 진상보고서 검토 결과 피해 여기자들이 강력한 조치를 원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하고 피해자들의 이해를 구했지만 성추행을 당한 A씨 등이 분노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A씨는 결국 이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며 자신의 출입처이기도 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하기에 이른다. A씨는 고소장에서 “이 전 차장에 대한 감찰본부의 경고처분이 부당하다”며 검찰의 솜방망이 처벌을 질타하고 “(이 차장 검사가) 검찰의 주요인사이기에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엄벌해 달라”고 밝혔다. 일선 검찰의 심장부인 서울중앙지검에서 그것도 기자들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한 검찰은 체면을 구겼다.

이 차장 검사의 불운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의 성추행 사건이 국회 정론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권으로까지 번진 것은 그가 지난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었던 국가정보원정치·선거개입 사건 수사를 맡았던 윤석열 전 국정원 특별수사팀장의 직속상관으로서 윤 검사와 대척점에 섰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

이 차장 검사는 당시 지시불이행으로 징계를 받은 윤석열 팀장과 사건수사와 관련해 사사건건 대립했다. 결국 검찰 간부의 술자리 성추행 사건의 파장이 여의도로까지 번지면서 김진태 검찰총장은 국회에 철저한 진상 조사와 처벌을 약속해야 했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진상조사 후 사실로 확인되면 엄중히 문책하겠다”며 의원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 전 차장의 성추행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 맡고 있다. 통상 검사가 연루된 형사사건은 전국 최선임 부장검사가 근무하는 형사1부에게 배당되는 관례 때문이다. 정수봉 형사1부장으로서는 난데없이 ‘뜨거운 감자’를 떠맡게 돼 난처한 상황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진다. 20년 경력의 고참검사인 이진한 지청장의 성추행사건은 직분에 충실하게 살아온 대다수 검사에게는 명예를 추락시킨 악재였다.

이와 관련해 1980년대 후반에 검찰청에서 공보업무를 맡기도 했던 P 변호사는 “옛날 검사들은 술은 많이 먹긴 했어도 깨끗하게 먹었다. 술자리에 같이 있던 상대방에 피해를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며 “검사들이 늘어나면서 검사의 품위를 잃어버리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P변호사의 이야기는 그래도 주도(酒道)를 즐길 줄 알았던 고참 검사들의 이야기다. 밤문화를 즐기는 검사들 사이에서는 스킨십을 시도하는 술자리 문화나 성추행 등 악습은 병가지상사처럼 있어왔다는 주장도 많다. 실제로 검찰 간부들이 저지른 술자리 성추행 논란도 이진한 차장검사가 처음이 아니다.

2012년 3월에는 술자리에서 역시 여기자를 성추행해 물의를 빚은 최모 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가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당했다. 당시 최 부장검사는 영등포 경찰기자단과의 회식자리에서 여기자 C씨의 손을 잡기도 하고 얼굴을 쓰다듬고 허벅지에 손을 대는 등 성추행을 저질렀다. 최 검사는 또 다른 여기자 D씨에게도 “집이 어디냐, 같이 가자”라는 말을 10여 차례 내뱉으며 신체 접촉을 했다가 결국 중징계를 당했다.

문제를 일으킨 최 부장검사는 현재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검찰 여직원을 성추행한 광주지검 목포지청 안모 검사가 법무부로부터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안 검사는 지난해 10월 검사실 회식을 하면서 검사 직무대리 실무수습 과정을 밟고 있던 사법연수원생 E씨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안 검사는 또 다른 자리에서는 동료 여검사 F씨에게 입을 맞추려다가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0년에는 법무연수원에서 교수로 근무하던 모 부장검사가 하반기 신임검사 교육을 마치고 교육을 이수한 신임검사들과 가진 저녁 회식자리에서 함께 있던 여검사 두 명에게 “뽀뽀하자”고 요구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견책 처분을 받기도 했다.

해당 부장검사는 술에 만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징계를 피하지는 못했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사단을 일으킨 그 부장검사가 징계받은 지 6개월 만에 일선 검찰청의 성폭력 사건 담당검사로 발령받는 해프닝이 벌어졌던 것이다. 안하무인격인 검찰조직의 생리를 보여주는 사례다.

나권일 기자 naf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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