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익과 대아방위공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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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포드」 미국대통령은 11일 월남에 대한 추가군경원조를 요청하는 대 의회 「메시지」 가운데 최근의 인지사태와 관련, 일부 동맹국들의 동요와 공산주의자들의 오판 가능성에 대해 단호한 제동을 가했다. 그는 명쾌한 어조로 미국의 국익을 옹호하기 위해 월남에 대한 계속지원이 필요하며 여타 우방에 대한 방위공약도 저버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을 비롯해서 자유「아시아」제국들은 월남사태를 두고서 제각기 미묘한 해석과 정책변화의 조짐들을 보여왔다. 개중에는 대양주와 「아시안」국가들처럼 배경이나 「하노이」에 외교적인 경사를 고려한 측도 있고, 한국에서처럼 「전시체제」돌입론이 제기된 곳도 있다.
이 모든 움직임들은 대체로 미국이 「나폴레옹」의 「모스크바」철수처럼 「아시아」·서태평양 일대에서 패주하고 있다고 보거나, 미국의 공약이란 한낱 종이 호랑이의 공약에 불과하다고 믿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포드」대통령은 한·미 방위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의 건재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한국의 방위가 미국본토의 방위를 위한, 불가결한 요체라고 다짐했던 얼마 전 「슐레징거」 국방보고를 부연한 것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인지반도는 미국의 안보나 이익에 불가결한 요체가 아니라서 별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한국 및 일본의 안보는 미국의 국가이익에 전적으로 일치된다는 뜻이다.
이같은 취지는 최근 김 외무가 북괴의 오판과 도발로 한국전이 재발할 경우엔 미국이 자동적으로 개입한다는 약속을 재차 받아낸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성의로써 우방의 우려를 진정시키려 한 셈이다. 사실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압승하지 못하리라는 평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존슨」말기와 「닉슨」 행정부 때부터의 일이었다. 「키신저」는 그것을 예견하고서 「파리」협정이란 출구만을 얻어냈던 것이다.
따라서 그 당시 미국은 「사이공」에 아무런 국제법상의 재 개입 공약을 준 사실이 없다. 바로 이점이 월남의 경우와 한국의 경우가 상이한 대목이다. 월남의 장래는 그 무렵 이미 미국에 의해 서서히 방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동남아내지 동북아 정책이 요즘에 와서 새삼스럽게 급전했다고 보는 것은 정확한 것이 될 수 없다.
국제정세에 대한 상황판단은 항상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시해야지, 사건이 표면화한 뒤에 와서 놀라워해서는 안 된다. 국제정세란 어떤 불가사의나 기적의 산물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인과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놀라워하거나 당황하거나 새삼스럽다고 할 일이 아니다.
사태에 경악하기에 앞서 그것을 미리 예견하고서 가장 현실적인 자세로써 국가이익을 추구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냉철한 국민이라면 마땅히 「닉슨」의 북경방문이나 월남전의 악화를 예기치 못한 충격 사건이라고 놀라기보다는 오히려 주체적으로 이와같은 장기전망을 미리 준비하고서 일관된 방위전략을 수립해 두는 성숙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북괴의 도발위협만 하더라도 유비무환으로 항상 이에 맞설만한 강력한 방위태세를 확보해둔다는 것은 지난 30년 간 우리국민의 변함없는 국가적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명제는 해외에서 어떤 사건이 표면화했다고 해서 비로소 정비해야할 일일 수가 없는 것이며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 이전에, 또는 그것이 있거나 없거나, 항상 당연히 만전을 기해두어야 할 성질의 과제인 것이다.
때문에 「포드」대통령의 태평양국가로서의 존속선언이 재 천명된 이 마당에 있어서 우리는 한·미 방위조약의 억지력을 회의하는 나머지 필요 이상으로 당황해 하지만 말고, 더욱 착실하게 우리의 내실을 따지는데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다시금 우리에게 한·미 방위조약이 미국의 국가이익에 일치한다고 재확인했다. 이제는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미국의 지원과 병행해서 우리는 군사력을 비롯한 자유국가국민으로서의 모든 역량에 있어 결단코 오늘의 월남과 같게는 되지 않겠다는 자세를 내외에 인식시켜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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