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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소멸한다"|좌등삭 <일본 경응대 명예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본은 금년 들어 사립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둘러싸고 커다란 진통을 겪고 있다. 사대에 대한 국고 보조금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운영난을 면할 수 없고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에 대한 반대 투쟁을 벌여 정치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다음은 그 진원을 파헤쳐 대학의 진로를 제시한 좌등삭씨 (경응대 명예 교수·전 사학 연맹 회장)의 『대학은 소멸한다』는 글의 요지이다. <편집자 주>
미국에서 사립 대학은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학비가 많이 드는 대신 명문교로서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반면에 미국에는 주립 대학이 많고 장학금 제도가 발달하여 학비가 문제시 되지 않으며 또 전체 대학 수로 볼 때 사립은 l∼2할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본에 있어서는 그와 정반대다. 국립이 3할 정도이고 7할이 다 사립인데, 2차 대전 전과는 달리 이제 국립과 사립은 똑같은 시민 교육의 장소가 되었다. 바꿔 말하면 대학이 대중화한 것이다.
전후 30년간 사립 대학은 대학의 대중화에 앞장을 서왔다. 전날의 제국 대학은 소수를 상대로 국가의 중추적 역할을 할 인재 양성에 목표가 있었으나 신제 대학 제도는 「엘리트」양성이 아니라 대학의 평준화를 꾀하는 한편 누구나 들어갈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새로운 대학 제도의 이 같은 이상대로 과연 30년간 대학은 참다운 지식인을 배출하는데 성공하였는가. 그러나 그 결과는 이상과는 먼 거리의 기형적인 「학력 사회」를 빚어냈다.
오늘날 일본 사회는 모든 분야에 걸쳐 대학 출신, 특히 어느 『좋은 대학』을 나왔느냐 하는 것이 출세의 주요 조건이 되었다. 따라서 대학은 거쳤다는데 의미가 있을 뿐 거기서 무엇을 배웠는가 하는 것은 문제시하지 않게 돼 학문 부재의 학력 사회를 키워낸 것이다.
현재 일본의 대학 교육은 국제 수준에서 보면 저하 현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대학 대중화라는 미명 아래 대학의 본질을 그르치고 있다. 그 죄는 사립 대학 당사자이며 또 국가의 문교 정책도 그만큼 부실했다.
전국 대학생의 8할을 차지하는 사립 대학 당사자들은 경영면에서 학교의 규모 확대에만 급급했으므로 그 질적 저하는 말하자면 자업자득의 결과다.
현재의 사립 대학이 재정적으로 흑자를 내는 방법은 ①무제한의 입학 ②뒷문 보결생의 막대한 입학금 ③학교 법인은 토지 소유에 무세이므로 막대한 토지를 갖는 것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리주의를 양심적인 대학에서는 적자를 메우는 방법으로 삼을 수 없다.
일본의 대학 교육은 국제적으로 도저히 비교도 안 될 만큼 근소한 돈 밖에 사용치 않으면서 대중화란 미명 아래 한심할 만큼 질적 저하를 가져왔고 또 고등 실업군의 사회 문제를 빚어내고 있다.
문부성은 질적 저하를 막는 궁여지책으로 대학원 대학을 구상해냈다.
전전의 구제대처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소수의 「엘리트」를 따로 양성하려는 생각인데 그러나 그것은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방향과는 아예 다르다.
근본적으로 오늘날 대학 교육의 문제는 지망하는 모든 청소년을 수용할 필요가 있느냐에 있다. 현재보다 입학 시험을 엄격히 할 뿐 아니라 입학후의 교육에도 몇 고비 선택의 채찍을 가해야 한다.
지방의 여관 같은데를 가도 대학 출신의 젊은 주인을 보게 된다. 과연 그 직업을 위해 대학을 나올 필요가 있는가. 18∼22세의 가장 주요한 시기를 엉터리 대학에서 허송했겠는데 「호텔」업에는 어학이나 「컴퓨터」·기타 실용되는 기술이 더 필요하다.
개방된 대학의 문호를 새삼 좁힌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과 지력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학문이며, 그같이 어렵고 돈을 많이 들이게되는 것이 대학 교육의 본래의 모습이다. 설사 학비가 없더라도 뛰어난 학생은 능히 장학금으로 구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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