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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대학의 역할은 역사 선도에 있다|조의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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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늘의 대학은 역사적 발전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더구나 인적인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의 특성이 내포되어 있다. 옛날의 대학과 오늘의 대학을 서로 비교할 때 다른 점도 많이 발견되지만 한편 대학의 목표가 고금을 통해서 공통되는 점도 없지 않다.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에는 대학생, 그 이념으로 「상아탑」을 내세웠으며 이 탑 속에 묻혀있는 학문의 연구 활동을 위주로 하는 소위 소수의 「엘리트」 교육에 일관되어 있었다. 즉 대중 사회를 떠난 교육이었다. 당시에는 교모·교복을 착용하였으며 통계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오늘의 대학은 미국의 「퍼킨즈」가 주장하는 대학의 사회 봉사라는 제3의 역할을 들고 있듯이 대중 사회와 거리를 가깝게 할 뿐 아니라 현실 참여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폐쇄」의 대학이 아니라 「공개」의 대학으로 되어 있다. 성격이 다른 두 형의 대학을 들었지만 역시 공통되는 점이 있다면 인간이라는 기초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학은 인간 위에 위치를 가져야 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상실된다면 대학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어떤 위기에도 방향 감각 잃지 말아야>
대학이 상아탑이든, 사회 봉사든, 혹은 선진 기지든 간에 적어도 대학은 다음의 세가지의 기능을 완수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라 본다. 첫째는 대학은 창조적 지성을 길러야 한다. 둘째는 사회에 대한 지도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세째는 대학은 국제 협조에 의하여 국제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나라의 대학은 이 세가지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대학인의 한사람으로서 깊이 반성하여 본다. 대학은 어떠한 위기에 처하더라도 그 방향 감각을 잃어서는 안 된다. 역사가 짧다는 점도 있지만 우리의 대학은 내실에 문제점이 많다. 밖에서 보면 화려한 것 같지만 안으로 보면 너무나도 구멍이 많아 도리어 불안한 감을 느끼게 된다.
불안과 긴장이 「캠퍼스」안에 지속되는 한 위에 열거한 대학의 기능을 다하기에는 분명히 차질이 생길 것이다. 한국의 학술이 발전되느냐 못되느냐는 우수한 지성의 유무에 달려있다.
대중을 등진 지성이 아니라 능히 대중의 선두에 선 지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의 사회적 기능은 큰 것이다. 참고 삼아 과거의 대학사에서 그 실례를 찾아보자.
중세에서는 「파리」 대학이 국제대학으로 되어 있었지만 근세에 들어와서부터는 독일의 대학이 세계 대학의 「모델」로 되어 있었다. 근세 독일의 대학은 자유 분위기에서 성장하였고 (「할레」 대학) 신인문주의를 대학의 이념으로 삼았다 (「괴팅겐」 대학). 또 근세의 대학을 대표하는 「베를린」 대학은 연구·교수·학습의 삼위일체를 강좌 하여 내실을 도모하였으며 국경과 종파를 초월하여 외실을 도모하였다.
당시 독일의 사정은 복잡하였으나 학원 안의 분위기는 「평화와 자유」가 유지되어 대학도 창조적 지성을 육성할 수 있었으며 사회에 대한 지도력을 가질 수 있었고, 또 국제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독일의 교육장관으로 있었으며 「베를린」 대학의 창설자인 「훔볼트」는 대학에 밀어 닥친 그 수다한 난국을 극복하려 하였고 「나폴레옹」에 의하여 당한 「프러시아」의 굴욕을 대학으로 씻으려고 하였다.
「훔볼트」는 대학의 자치와 학문 연구의 자유를 보장하여 주었다. 독일의 대학은 독일의 통일 과업에 공헌하였고, 독일을 구제하였던 것이다. 국가가 대학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국가를 위하여 존재한 것이다. 국가 없이는 대학이 존재될 수 없는 만큼 대학의 사명이란 지대한 것이다.
옛날부터 「학난성」이란 말이 있듯이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되어 있다. 더구나 최근에 와서는 옛날과도 달라 정말 공부하기가 어렵다. 공부란 말은 국민학교나 중·고교에서 쓰는 말이지, 대학에서는 연구라는 말을 써야 할 것이라고 정정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나 여기에서는 같은 뜻으로 썼다. 사실상 대학에서의 연구란, 일찌기 「야스페르스」가 「대학의 이념」에서 밝혔듯이 교수 및 학생에게 다 적용되는 말이다. 그래서 대학을 「학문 공동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대학도 「학문 공동체」 돼야>
현재 한국의 대학은 과연 학문 공동체로 되어 있는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연구라는 것은 맨주먹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에 해당한 사실이 절대로 필요하다. 「아테네」 대학의 사학과의 시설을 하나 예로 든다. 독립된 5층의 「빌딩」이 사학과 전용의 도서관으로 되어 있다. 1층에는 고고학·고대사실, 2층에는 중세사실, 3층에는 근세·현대사실, 4층은 학술 잡지실로 되어 있다. 교수 연구실과 학생들의 합동 연구실도 충분히 부설되어 있다.
「그리스」의 경제 사정이 한국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국가에서 막대한 예산을 세워 교수·학생들에게 연구를 지원하여 준다. 시설도 중요하지만 환경도 문제이다. 안정되지 않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는 사전이 손에 잡혀지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대학 구내에는 무슨 비상 사태가 선포되어 있는 것 같다. 대학은 모름지기 대학의 원점인 평온 상태에로 되돌아가 명실공히 학문 공동체가 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필자 약력>
□연세대 명예 교수. 한·희 협회장
▲1906년6월 출생
▲전 연세대 부총장
▲저서 『서양사개설』『희랍신화』『희랍 사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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