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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에 초미세먼지 1억개 마셔 … 너무 작아 폐 속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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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서울시내 미세먼지가 ㎥당 162㎍(마이크로그램)까지 치솟았던 25일 낮 12시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공원 옆 고층건물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하늘이 온통 뿌옇다. 400여 명의 시민이 트랙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지만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대부분 황사 마스크가 아닌 일반 방한용 마스크였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나왔다는 박모(69·여)씨는 “잠깐 동안만 산책 삼아 걸을 생각으로 나온 거라서 마스크까지 준비할 생각은 못했다”며 “미세먼지가 심해서인지 목이 좀 칼칼하고 괴롭다”고 말했다.

 기자는 약국에서 구입한 일회용 황사 마스크를 쓰고 시민 사이에 끼어 천천히 트랙을 걸었다. 마스크는 숨을 내쉴 때마다 부풀어 올랐고, 안경에는 김이 서렸다. 1시간을 착용한 뒤에 보니 흰색 마스크 여기저기에는 아주 작은 검은 가루 같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그냥 마셨을 미세먼지였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미세먼지를 얼마나 마시게 되는지 전문가의 자문과 실험실 측정 등을 통해 계산해 보았다.

 성인 남자는 1분간 약 6L, 1시간이면 0.36㎥의 공기를 마신다. 미세먼지 농도가 162㎍/㎥일 때 1시간에 58㎍, 24시간 동안 1400㎍(1.4㎎)의 미세먼지를 들이마신다는 계산이다. 1㎍은 100만분의 1g, 혹은 1000분의 1㎎이라지만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단위여서 162㎍, 58㎍이 얼마나 되는 양인지 쉽게 와닿지 않는다. 1㎎을 백설탕으로 저울에 달아보면 작은 설탕 알갱이 20개, 100㎍은 설탕 알갱이 2개에 해당한다. 설탕 알갱이를 한 변이 0.5㎜(500㎛, 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인 정육면체라고 했을 때 이 설탕 알갱이 하나가 1㎛ 크기로 쪼개지면 1억2500만 개의 초미세먼지가 공중에 떠다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앙일보 강찬수 환경전문기자가 보라매공원에서 황사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을 셀프 카메라로 촬영했다.

 단국대 의대 권호장(예방의학) 교수는 “사람이 진화 과정에서 흙먼지에는 적응했지만 미세먼지에 대해서는 방어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중금속과 각종 유해물질이 포함된 미세먼지는 아주 가늘어 허파꽈리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혈관 속으로 들어가 심혈관질환 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지난해 10월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권 교수는 “외출할 때에는 황사 마스크를 쓰는 게 안전하지만 일부 걸러지지 않는 것도 있는 만큼 과신은 금물”이라며 “미세먼지에 노출됐을 때는 비타민C나 과일, 항산화제를 복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26일에도 미세먼지 오염 상황이 5일째 이어졌다. 이날 오후 7시까지 서울의 미세먼지 일평균 농도는 137㎍으로 측정됐다. 최고 농도는 190㎍을 기록했다. 광주·전남·제주를 제외한 전국이 노약자나 호흡기환자들이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나쁨(121~200㎍/㎥)’ 단계로 나타났다.

 27일에도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전망이다. 서울 등 수도권은 ‘나쁨’, 충청권·강원권·호남권·영남권은 ‘약간 나쁨(81~120㎍/㎥)’ 수준이 될 것으로 예보됐다.

 한편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신대방동 기상청의 ‘환경·기상 통합 예보실’을 찾아 미세먼지 예보와 관련된 업무 보고를 받고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시 예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관용차 운행도 중단하기로=서울시는 초미세먼지(PM2.5) 주의보가 이틀 이상 계속되면 이를 재해로 간주해 시장단 차량을 포함한 관용차 운행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시민들의 일반 차량까지는 포함되지 않는다. 시는 또 자동차 매연 단속을 강화하고, 대기오염물질 배출업소 1056곳에는 조업시간 단축을 요구하기로 했다. 시 직영의 소각시설과 집단에너지시설의 운영시간은 기존의 80%까지 줄인다. 서울시는 다음 달 중으로 중국 베이징과 대기오염 정보교환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계획이다.

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강인식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오염 심했던 25일, 서울 걸어보니

미세먼지 오염이 심했던 지난 25일 본지 강찬수 환경전문기자가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1시간 동안 걸으며 황사 마스크 착용 실험을 진행했다. 1시간 뒤 살펴본 마스크에는 여기저기 검은 먼지가 붙어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경우 이날처럼 미세먼지 농도가 ㎥당 162㎍일 때에는 성인 남자 기준으로 1시간 동안 미세먼지 58㎍을 마시게 된다. 이는 2000㏄ 디젤 승용차의 엔진을 켜놓은 차고(60㎥)에서 3시간40분 동안 머무르며 들이마시는 매연(미세먼지)의 양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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