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집밥' 25년 … 단골, 손주와 함께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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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80년대 미국 오리건 주의 세일럼에서 유학생으로 지낼 때였다. 워낙 시골이라 한식을 먹으려면 왕복 4시간을 운전해서 다녀와야 했다. 하지만 그 동네에서도 이태리 식당은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한 번 들러서 리조또를 맛보았더니 속이 든든해졌다. 그 후론 밥 생각이 날 때면 이태리 식당을 찾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유학 시절을 위로해주던 맛은 잊히지가 않았다. 그래서 90년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 맞은편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차렸다. 이태리 가정식을 선보이고 싶어 ‘라 쿠치나(La Cucina)’란 이름을 붙였다. 이탈리아 어로 ‘부엌’이란 뜻이다. 25일로 25주년을 맞는 국내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쿠치나 장세훈(53·사진) 대표 얘기다.

 지난주에 방문한 식당은 이탈리아 가정집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장 대표는 25년간 함께해 온 가구들을 쓰다듬었다. “지금 이 의자들도 뼈대는 25년전에 사들인 것 그대로입니다. 패브릭만 1년에 한 번씩 바꿔 끼우고 있어요.”

 개점 당시 유명 호텔을 제외하곤 서울에서 이태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드물었다. 라 쿠치나는 호텔보다 음식 가격이 합리적이면서 남산 기슭에 위치해 운치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주한 외국인들과 해외 유학파들 사이에서 먼저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방문했고 거스 히딩크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단골이다.

양식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자 2007년엔 기내식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때부터 7년째 아시아나 항공의 1등석과 비지니스석 양식 메뉴와 요리법은 라 쿠치나가 개발하고 있다. 2010년엔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 ‘자갓’이 이곳을 서울의 대표 레스토랑으로 꼽기도 했다.

 2001년 스페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내한했을 때였다. 라 쿠치나에 들른 그는 자기가 원하는 서너가지 치즈만 넣어서 파스타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단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치즈가 없었다. “직접 남대문 시장에 있는 수입재료상에서 그 치즈를 구해왔어요.” 흡족했던지 도밍고는 그날 점심에 이어 저녁, 다음날 점심에도 이곳을 찾았다.

 장 대표는 외국 레스토랑에 가면 딱 한가지가 부럽다고 했다. 한국에선 아직까지 양식을 먹을 때 세트 메뉴를 찾거나 메인요리 한 가지만을 고집하는 편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에피타이저(식전요리)나 사이드 메뉴가 다양하지 못한 탓도 있다”며 “외국에 나가면 주로 메뉴 구성이 어떻게 돼 있는지 본다”고 말했다. 그에게 양식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을 물었다. “주문할 때 오늘 어떤 재료가 신선한지 물어보면서 자연스럽게 추천을 받아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처음 오픈할 때 자녀와 함께 오셨던 분들이 이제는 손자·손녀들과 함께 3대에 걸쳐 찾으신다”며 “앞으로 4대, 5대에 걸쳐 방문하는 집으로 거듭나는게 다음 25년 동안의 목표”라고 장 대표는 말했다.

글=위문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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