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 대통령, 국민과 함께하는 진돗개 정신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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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로 취임 1년을 맞았다. 박 대통령의 지난 1년은 위기관리에서 성공하고 국민에게 안정과 신뢰감을 심어준 기간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어제 보도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62.7%로 대선 때 득표율 51.6%를 크게 넘어섰다. 지난해 말 같은 방식의 조사에서 기록했던 51.4%로부터 회복세도 뚜렷하다.

실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2년뿐

 박 대통령의 안정된 지지율은 집권 2년차를 맞이하면서 50%대 이하로 확 떨어지곤 했던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인상적이다. 국민 눈높이에서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 행동적 특성과 보수적 유권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견고한 지지세가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박 대통령에겐 국민의 40% 정도가 지지를 유보하거나 반대하고 있다. 취임 때 약속했던 “100% 대한민국”이나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의 꿈은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

 냉정하게 말해서 박 대통령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올해와 내년, 2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2016년은 4월에 국회의원 총선이, 2017년은 12월 대선이 예정돼 있다. 박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천명한 것에도 이런 절박한 인식이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경제혁신은 박근혜 대통령 시대의 한국에 요구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는 국정 2년차에 박근혜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과제로 경제살리기를 꼽고 있다. 이를 위해 정면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경제 구조 개혁이다. 구조 개혁은 필연적으로 기득권 층의 반발을 부르게 된다. 박 대통령이 국정 최우선 과제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꼽고, 그중 공공기관 개혁과 규제 개혁을 핵심 의제로 설정한 것도 이런 반발을 넘어서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철밥통 세력과 전쟁에서 이겨야

 지금 300여 곳 공공기관의 빚은 560조원으로 나랏빚 규모를 넘어섰다. 놔두면 나라 곳간을 거덜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코레일 민영화 반대 철도파업에서 보듯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려는 세력의 저항은 결코 만만치 않다. 공공부문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정부의 솔선수범도 필요하다. 적게 내고 지나치게 많이 받는 구조 때문에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고 있는 공무원연금도 과감하게 수술해야 한다. 두 차례의 큰 수술 과정을 거쳤던 국민연금과의 형평을 위해서라도 이 정부 내에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복지 분야는 높은 기대치에도 불구하고 아직 손에 잡히는 결과가 없다. 특히 기초연금의 지급 방식이 아직도 결정되지 않아 7월 시행이 불투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 국가라는 심각성을 갖고 대통령과 여야 모두가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박 대통령은 ‘진돗개 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한번 물면 살점이 뜯겨나갈 때까지 안 놓는 진돗개 정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여 오는 6월 지방선거의 포퓰리즘 분위기에 편승해 혹은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저항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철밥통 세력과의 전쟁에서 질질 끌려가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될 것이다.

 하나 더 주문할 건 개혁은 국민과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에서 취약점을 보이고 있다. ‘국민을 위하여’라는 정신은 충만한데 ‘국민과 함께’라는 인식은 부족하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나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을 펴는 야당의 협력이 있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정치적 반대층과 정성스러운 대화와 설득하는 과정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정치 분야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중에서 인사 문제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은 35%인 반면 불만족스럽다는 62.3%였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나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같이 수첩인사, 국민의 공감을 받기 어려운 인사가 되풀이되면 대통령의 국민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사 실패 되풀이하면 개혁 못해

  외교안보는 박 대통령이 지난 1년 가장 성과를 낸 분야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유연성을 보인 게 주효했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어려운 과제들이 남아 있다. 북한 핵문제다. 김정은 체제는 이른바 ‘핵과 경제건설의 병진 노선’을 전면에 내걸어 한반도의 구조적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외면하면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은 어려울 것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이 갖는 엄청난 가치를 생각하면 대담하고 실질적인 접근방식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통일은 대박”이라는 명쾌한 구호의 내실을 담아낼 수 있는 착실한 준비의 과정이 있어야 하겠다.

 동맹국 미국과 급부상하는 중국을 상대로 한 외교 성과도 소중한 자산이다. 미·중 방문을 통해 쌓은 양국 정상과의 신뢰는 핵심 국정과제인 한반도 통일기반 구축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일 관계는 숙제로 남아 있다. 역사·영토를 비롯해 전방위에 걸쳐 전선이 형성돼 있다. 이 문제가 아베 일본 내각의 퇴행적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통일기반 구축과 동북아 평화 구상의 현실화를 위해 좀 더 숙고해야 한다. 과잉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국제주의의 차원에서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