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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소립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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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립자/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9천5백원

프랑스 작가 우엘벡(45)이 1998년에 발표한 두번째 소설 '소립자'는 비평적 상찬(賞讚)과 혹평의 경계선상에 서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거느린 문예지 '리르'는 98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지만, 콩쿠르상 심사위원회는 수상 후보작에서 아예 빼버렸다.

'좋은 책은 유쾌한 소품과 강한 충격을 주는 대작으로 나뉘는데 '소립자'는 새로운 범주, 유쾌한 대작에 속한다''다른 소설들이 토끼를 사냥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은 거대한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

격찬이 쏟아졌는가 하면 '전체주의적 악몽을 찬양하고''잡다한 지식을 무절제하게 나열하는가 하면''구성이 엄밀하지 못하고 논증에 논리성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도 따라다녔다.

우엘벡 본인은 몸담았던 문예지에서 쫓겨났고 소설 속에 실명 등장하는 뉴에이지 캠프장으로부터 책의 수거.폐기를 요구하는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는 "카뮈 이래 프랑스의 가장 큰 문학적 사건"이라고 썼다.

문학성에 대한 논란은 독자를 불러모았다. 프랑스에서 35만부가 팔렸고 전세계 30여개국에서 번역됐다.

소설의 흡인력은 명성만큼이나 강력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인가 하면 인생과 세계에 대한 품 넓은 성찰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해박한 생물학 지식을 동원해 얘기를 풀어나가는 대목들은 신선하다. 그런 매력적인 요소들은 소설을 비판하는 근거로도 이용되는 양날의 칼로 보인다.

남자.여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단어들을 버젓이 사용하는 정도는 기본이다. 폰섹스에서나 등장할 법한 음담이 난무하고, 세 사람 이상이 참가하는 성행위인 파르투즈, 그보다 좀 더 규모가 커진 갱뱅 장면도 쉽게 눈에 띈다.

'하드 코어' 포르노를 그대로 옮긴 듯한 노골적인 성애 장면도 많다.

두 주인공인 이부(異父)형제의 형인 브뤼노는 네살 때 여자아이들에게 나뭇잎 목걸이를 만들어주는 놀이에서 혼자 낙오했던 기억, 열살 때 동급생들에게 당한 지독한 폭행 등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성적인 열등감에 빠진 채 하루에도 몇번씩 수시로 발기하고 수시로 사정하는 섹스 중독자다.

68년 운동 세대들이 '화끈한 섹스를 즐기기 위해' 70년대에 설립한 캠프장 '변화의 장'에서 섹스 파트너 크리스티안을 건진 브뤼노는 98년 지중해 해안 아그드 곶의 나체주의자 해변을 찾는다.

아그드 곶은 용감한 한 커플의 선도적인 애무에 따라 해변에 모인 수십.수백의 커플이 동시에 집단적 애무에 빠져드는 '성적인 사회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질펀함의 반복, 그 지루함의 반대편에는 브뤼노의 동생이자 분자 생물학자인 미셸 제르진스키가 서 있다.

형제 간의 대화는 20세기 중반 이후 유럽 성 풍속의 변화를 소개하기도 하고 경쟁의 지속이 욕망을 증가시키고 결국은 인간의 삶을 황폐화하는 시스템을 지적하기도 한다.

미셸의 주장은 "유물론과 근대과학이 낳은 '형이상학적 돌연변이'인 합리주의와 개인주의 중 우위인 것은 개인주의다.

섹스와 생식이 완전히 분리돼 자유로운 쾌락 추구가 가능해지더라도, 곧 자기 도취적인 차별화의 원리가 가동되기 때문에 개인 간의 성적인 경쟁, 그에 따른 인간의 개인화, '소립자'화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결국 '거대한 사냥감'을 노린 '유쾌한 대작'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모든 개체들이 동일한 유전자 정보를 갖는 새로운 종(種)으로 인류를 대체하자는 과격한 것이다.

문학성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학.성.종교를 넘나드는 '소립자'의 소설적 접근은 우리 문학계에 낯선 것이다. 물론 최종적인 가치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겠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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