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까지의 전략 무기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자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제3세계의 단결을 추구하기 위한 1백10여개 자원국 회의가 「세네갈」의 「다카르」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세계의 자원보유국들이 추진하여온 자원민족주의가 이제는 마침내 제3세계의 공동전선을 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번 자원국 회의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들 나라들이 공동의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정부간 위원회의 행동계획을 구체적으로 마련, 심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원 국들 혼자의 힘으로써는 자신들의 권익을 충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일치 단결하여 앞서 산유국들이 보여 준바와 같은 공동 보조를 취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자원 국들이 마련한 행동계획안은 「바나나」에서 아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자연자원을 서방공업국과의 협상을 위한 전략무기로 이용, 자원 국들의 권익을 최대한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자는 것이다.
또 동 계획안은 실행 권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자연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며 다국적기업에 대해서도 통제와 조정규정을 마련한다고 했으며, 이밖에 제3세계 상호협력을 위한 상설기구의 설치와 원자재가격의 인상을 또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들 자원보유국들의 움직임은 산유국들의 석유무기화전략을 그대로 본뜨려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것은 종래와 같이 자국의 자연자원을 서방선진공업국들에 헐값으로 넘겨주지 않겠다는 것이고, 국자자본의 자원분배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정치적·경제적 자원민족주의의 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종래의 국제경제질서를 송두리째 부정하려는 것이 된다. 종래의 국제경제질서는 서방선진공업국 또는 국제자본이 공업생산물의 시장을 지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업원료인 1차 산품의 시장까지 지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서 세계의 자원보유 후진국들은 정치적 독립뿐만 아니라 경제적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자원민족주의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고 자국의 생산물의 시장지배력을 최대한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 것이다.
제3세계라 일컬어지는 자원보유국의 이같은 행동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산유국들이 취한 석유무기화의 성공에서 크게 고무를 받은 것임은 재언할 필요가 없다. 그러기에 그들은 산유국의 예에 따라 정부간의 공동전선을 펴려는 것이고, 서슴지 않고 국제「카르텔」의 형성을 기도하며, 이를 국제자본에 대한 대항수단이라는 구실로 정상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국제경제 추서가 크게 전환하고 있다는 현상으로도 설명될 수 있지만, 서방공업국 내지 국제자본에 대해서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세계경제가 불황에 접어들고 있는 일대요인도 바로 이런데서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서방공업국들은 공업생산물의 시장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우리의 처지와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이러한 형편에서 가장 곤경에 처하게 되는 나라는 공업생산물에 대한 시장지배력도 발휘할 수 없고 그렇다고 또 자원시장에 대한 지배력도 없는 나라들이다. 석유 「쇼크」의 경험은 이미 우리에겐 뼈저린 교훈을 주고도 남음이 있지 않았던가.
결국 우리는 변화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삼 우리 나름의 현명한 개발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임을 뼈저리게 통감해야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