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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남자 선수들에게 금메달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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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근대 올림픽의 개척자인 피에르 쿠베르탱의 한마디는 강렬하다.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지 않다. 참가하는 데 있다.”

 가슴을 울리지만 현실에선 다르다. 이 정신을 100% 받아들이기 어렵다. 경기에 참가하는 한 이기는 게 영광이다. ‘프리랜서 올림피안’ 안현수(아니, 빅토르 안이 맞겠다)는 승리했기에 신화가 됐다.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수록 한국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에 드리운 그림자는 짙다. 남자 선수들은 소치에서 한 개의 메달도 목에 걸지 못했다. 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경기장 뒤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청춘의 좌절은 애처로워 보였다.

 나는 주장한다. ‘남자 선수들에게 따뜻한 박수와 금메달을 줘야 한다’. 이 말은 경기에서 진 선수들에게 보내는 의례적인 격려가 아니다. 이들은 메달을 못 땄지만 지지는 않았다. 패배자는 이들을 감싸주지 못한 우리 사회다. 러시아로 귀화해 3관왕의 위업을 이룬 빅토르 안과 맞물리면서 선수들은 묘한 눈길을 받아야 했다. ‘파벌 싸움으로 쫓겨난 최고의 선수를 대신해 자리를 차지한 이류들’.

 빅토르 안이 고국을 등진 이유의 하나였던 빙상연맹의 파벌싸움은 분명 개선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빅토르 안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파벌은 있었지만 그게 귀화를 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운동이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선수들은 4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올림픽을 준비했다. 소치의 빙판 위에 그들은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빅토르 안이 승승장구하자 언론과 네티즌, 그리고 여기저기서 불편한 감정이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도 아쉬웠다. 박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안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 줄 세우기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대통령의 말을 받아 “빙상연맹의 비리와 국가대표 선발 방식 등 전반적인 시스템을 되짚어 보겠다”고 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는 간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이런 일련의 발언은 현 대표선수들이 실력보다는 파벌의 힘으로 뽑혔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소치의 선수와 코치진들이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유독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선수들이 실격을 많이 당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반드시 메달을 따야 한다는 부담에 선수들의 몸은 무거워 보였다. 무리한 질주와 끼어들기는 그래서 나온 게 아닐까.

 실력을 공평하게 평가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건 꼭 필요하다. 다만 올림픽이 끝난 후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차분히 찾았으면 어땠을까. 상대 선수와 치열히 다투는 그 시점에 굳이 그런 지적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 한마디는 장래가 창창한 젊은 선수들의 가슴에 씻기 힘든 상처로 남을 것이다. 선수들은 파벌의 수혜자가 아니고 피해자일 뿐이다. 가슴이 휑해진 이 청년들에게 따뜻한 박수가 깃든 금메달은 그래서 필요하다.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