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연아 선수가 있어 우린 행복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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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연아는 메달 색깔이 무의미한 경기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줬다. 그는 모든 면에서 기적 같은 선수였다. 어제 새벽 김연아 선수는 소치 빙판에서 압도적인 기량과 예술의 경지에까지 오른 연기로 전 세계를 사로잡는 마법을 부렸다. 피겨 전문가들조차 홀로 우뚝 솟은 그녀를 ‘차원이 다른 스케이터’라고 표현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김연아가 보여준 ‘승부를 대하는 자세’였다. 심판들의 점수는 분명 공정성에 의심이 들게 했다. 피겨의 전설인 카타리나 비트는 “이 판정이 토론 없이 지나가선 안 된다”고 했고, 해외 언론들도 러시아의 텃세와 ‘심판진 스캔들’을 꼬집으며 흥분했다. 그러나 김연아는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보여주었다. 점수는 심판의 몫”이라며 선을 그었다. 시상식에서는 여왕다운 품위와 여유를 보여주며 태도에서 압도했다.

 그의 선수 생활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전용 경기장 하나 없는 피겨 불모지에서 홀로 악전고투하며 세계 피겨사에 등장했다. 편파 판정의 부담은 언제나 김연아를 따라다녔다. 신개척지나 다름없었던 세계 피겨계에 유례없이 등장했던 그녀였기에 뛰어난 실력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는 언제나 압도적 실력으로 경기를 이끌어야만 윗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단련해 밴쿠버 올림픽에서 달성한 기록은 깨지기 어려운 전설로 남았다.

 김연아는 차원이 다른 자신의 피겨 실력에 대해 “타고난 재능도 있었던 것 같고, 운도 따랐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녀의 완벽한 점프와 부드러운 착지에는 지난 17년간 수없이 찧은 엉덩방아와 엄청난 연습량이 깔려 있었다는 사실을. 김연아는 허리디스크, 무릎 부상, 발목 통증 등 온갖 어려움도 놀라운 정신력으로 뛰어넘었다. 마지막 무대에선 올림픽 2연패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긴장감까지 훌륭히 견뎌내며 무결점 연기를 펼쳤다.

 우리는 김연아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다.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영역에 도전해서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는 증명해 보여줬다.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도 후배들에게 큰 무대의 경험을 주기 위해 다시 스케이트화 끈을 조인 것도 그렇다. 더 오를 곳이 없는, 자칫하면 추락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시 나선 건 보통의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김연아는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게 해줬다. 메달과 상관없이 온 국민이 ‘연아야 고마워’를 릴레이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올림픽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 아니 올림픽 2연패 이상의 소중한 것을 남겼다. 우리는 김연아 선수로 인해 행복했다. 그녀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그리고 그녀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 김연아 선수! 은퇴를 축하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