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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공격에 제동 위협…7함대 발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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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월남군의 이번 신정 대공세는 키신저가 주도한 강대국 위주의 편의주의적 파리 평화 협정에 한계를 느낀 월맹 측이 2년만에 군사 행동으로 강한 반발을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곧 베트콩 측이 사태의 군사적 해결로 정책을 바꾸었을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사태이다.
미국은 73년1월 파리 협정 조인 당시 소련·중공의 측면 지원을 얻어 「일단 전쟁을 종식시키고 그 이후의 문제는 월남인간의 정치적 해결에 일임한다」는 조건하에 월맹·「베트콩」측의 동의를 끌어내는데 성공했었다. 이어 「키신저」는 군사적인 방식이 아닌 정치적인 투쟁에 의해서라면 월남이 공산화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는 함축성 있는 발언을 함으로써 「베트콩」측의 정치 참여를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취했었다.
그러나 협정에 따라 미군이 월남에서 철수하고 난 이후에도 미국은 「티우」 정부에 종전수준의 군사 장비 지원을 하고 「티우」가 주장하는 「베트콩」의 「연정 참여 불용」 방침을 배후에서 지원했다. 이에 따라 「티우」 정부는 오히려 휴전 협정 이전보다 더 군사 공세를 강화, 지난해에만 10만명 이상의 전사자를 내는 치열한 전쟁 상태를 지속했던 것이다.
이에도 불구, 공산 측이 지금까지 대대적인 군사 공세로 대응하지 않았던 것은 「닉슨」이 물러난 것과 때를 같이하여 「티우」 정권의 부패와 독재를 들어 미국 의회가 대월 원조액을 8억 달러나 삭감하고 가톨릭·불교도를 중심으로 월남 내에 대대적인 반 「티우」·반 부패 운동이 일어남으로써 「티우」의 자체 붕괴의 가능성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연말부터 「티우」의 일제 반격에 의해 월남 내 반정부 운동이 소강 상태로 빠져들게 되자 올해 예상되는 총선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해야할 입장에 있는 「베트콩」측으로서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베트콩」 측은 3자 연정을 실현하려는 「파리」 협정의 내용에 장해가 되는 요인을 총선거 전에 제거하고 티우 정권의 타도 내지 약화를 위해 군사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미 7함대의 주력인 「엔터프라이즈」항모가 보도된 대로 월남 해역에 출동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곧 군사 활동을 개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 대통령에게 월남 개입을 허용했던 소위 통킹만 결의안은 73년 「인도차이나」 지역에서의 군사 활동을 금지시킨 의회 결의로 철폐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포드」 대통령은 「닉슨·독트린」의 원칙에 따라 「사이공」 함락 위험과 같은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지상군 아닌 공군기의 출격을 먼저 명하고 의회의 사후 승인을 구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어렵게 빠져 나온 월남의 수렁에 다시 빠져드는 것을 미국 여론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또 그와 같은 개입이 과거의 예처럼 월남 안의 전세를 크게 좌우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만약 7함대가 실제로 월남 근해에 갔다면 그것은 단지 월맹에 대한 위협을 노린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될 것 같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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