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프기 만한 북한의 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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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의 설은 이른바 「김일성 신년사」로부터 시작된다. 종전에는 이 「김일성 신년사」가 1월1일0시를 기해 발표되었으므로 모든 직장인은 직장에 모여 「라디오」를 통해 이 「신년사」를 부동자세로 들어야 했다. 설은 밤잠을 못 자는 「괴로움」과 통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신년사의 발표를 1일 상오10시로 변경했다. 그 대신 신년사를 듣는 의식이 거창해졌다.
군마다 1개 이상씩 있는 김일성 동상 앞에 전 주민이 모인다. 직장별·단체별로 마련된 꽃다발로 동상은 덮여진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 신년사를 듣는다.
그러고는 『충성을 다하자!』 『목표를 1백50% 초과 달성하자!』는 등의 결의문이 낭독되고 「김일성 만세」를 부른다. 이를 가리켜 『충계의 결의 모임』이라고 부른다.
의식이 끝나면 각자는 이 신년사를 암송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웃어른을 찾아 세배를 한다든가, 개인끼리 선물을 주고 받는다든가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도시에서 뇌물용으로 옷가지나 밤 등 먹을 것이 선물로 오가는 경우가 있으나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그러나 아직 근절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최근에 귀순한 사람들은 말하고있다.
차례도 거의 없다. 해방동이는 차례라는 말조차 모른다. 김일성은 제사 그 자체를 부정한다. 지난 1월4일에 열렸던 「전국농업대회」에서 김일성은 『죽은 사람의 무덤이나 사진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근로자들 속에서 낡은 생활습성을 없애고 새로운 사회주의적인 생활양식을 세우기 위한 투쟁을 적극 벌여야 하겠다』고 했다.
부녀자들은 이 설 연휴 때에 밀린 빨래를 해야한다. 여자도 노동의무를 지고있는 북한에서는 가사를 정리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협동농장에서는 설이나 돼야 벽지를 바른다거나 쥐구멍을 틀어막을 시간을 얻는다.
북한의 설은 바쁘고 고달픈 설이 되는 것이다.
북한출생 해방동이로서 월남한 귀순급들은 한국에서 떡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이 무엇인가 의아했었다.
엄격한 식량배급제도하에 있는 북한에서는 특배가 없는 한 떡을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외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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