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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연아·상화만 귀한가요, 내 가슴에도 태극마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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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그들은 이상화(25·스피드 스케이팅)도, 김연아(24·피겨 스케이팅)도 아니다. 그러나 당당하고 행복하다. 가슴엔 태극마크가 달려 있고, 여기는 올림픽이 열리는 소치다. 올림픽에서 스타는 극소수이지만 국가대표는 총 71명이다. 우승권이 아니어도 금메달만큼 반짝이는 선수들의 무한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신미성(36)·김지선(28)·이슬비(26)·김은지(25)·엄민지(23·이상 경기도청)로 구성된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세계랭킹 10위)은 17일(한국시간) 아이스큐브 컬링센터에서 열린 미국과의 예선 8차전에서 7엔드까지 11-2로 앞서며 완승했다. 세계랭킹 7위 미국은 7엔드를 마친 뒤 기권했다.

 컬링 대표팀의 예선전 성적은 3승5패가 됐다. 18일 새벽 세계랭킹 2위 캐나다와 예선 최종전을 남겨두고 있지만 이긴다 해도 4강 진출은 불가능해졌다. 끝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한국 컬링은 충분히 성공했다.

 어느 곳에서도 훈련 지원을 받기 어려웠던 컬링 대표팀 선수들은 모텔을 전전하고 분식집에서 끼니를 때우며 훈련했다. 빗자루처럼 생긴 브룸을 들고 다니면 “유리창 청소하느냐”며 놀림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악전고투 끝에 이들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진출권을 따냈다. 1994년 국내에 컬링이 도입된 지 20년 만이다. 치열한 두뇌 싸움과 색다른 경기방식으로 ‘얼음 위의 체스’로 불리는 컬링은 소치 겨울올림픽을 통해 많은 팬을 확보했다. 컬링 관계자는 “올림픽을 보며 컬링을 배우겠다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예쁘장한 이슬비는 ‘컬링돌’로 인기를 얻고 있다.

 원윤종(29)과 서영우(23)로 구성된 한국 남자 봅슬레이 2인승 A팀은 17일 산악 클러스터의 산키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1·2차 레이스에서 합계 1분54초61을 기록했다. 1차 레이스에서 18위(57초41)를 차지했던 A팀은 이어 벌어진 2차 레이스에서 19위(57초20)로 떨어졌다.

 한국은 썰매 불모지였다. 2010 밴쿠버 올림픽 이전까지는 강광배(41)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 부회장 등 ‘썰매 1세대’ 선수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썰매를 탔고, 대회 때는 썰매를 빌려 타기도 했다. 소치 대회에는 썰매 전 종목에 참가할 만큼 선수층이 두터워졌지만 세계의 벽은 역시 높았다.

 그런 가운데 스켈레톤 입문 17개월 만에 올림픽에 나선 윤성빈(20) 같은 보석도 등장했다. 윤성빈은 16일 스켈레톤 남자 1인승에서 1~4차 레이스 합계 3분49초57을 기록해 16위에 올랐다. 잠재력이 워낙 큰 만큼 2018 평창 올림픽에선 메달권 진입을 기대할 만하다.

 모굴 스키 대표 최재우(20)는 11일 프리스타일 스키에 출전해 상위 12명이 겨루는 결선 2라운드까지 진출했다. 결선 2라운드에서 첫 번째 에어(공중묘기) 동작인 백 더블 풀(뒤로 돌면서 720도 회전) 연기를 마치고 모굴 코스를 내려오다 코스를 이탈해 실격당했다. 어이없는 실격을 피했다면 메달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최재우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지구력과 유연성을 끌어올려 평창에서 금메달을 노리겠다”고 말했다.

 여자 장거리 스피드 스케이팅 기대주 김보름(21·한국체대)은 여자 3000m에서 4분12초08로 13위에 올랐다. 김보름이 기록한 13위는 한국 선수가 역대 겨울올림픽 여자 3000m에서 올린 최고 순위다.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하다 2011년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환한 김보름은 지난해 12월 트렌티노 겨울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 2개·은메달 2개를 따냈고,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도 한국 여자 장거리를 이끌 선수로 잠재력을 뽐냈다.

 여자 루지 선수로 올림픽에 첫 출전한 성은령(22·용인대)은 루지 여자 1인승 1~4차 시기 합계 3분28초743의 기록으로 31명 중 29위에 머물렀지만 20위권 진입 목표를 달성했다. “1000분의 1초를 위해 6끼를 먹었다”는 성은령은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소치=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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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지 대표팀의 성은령(22·용인대)이 지난 12일 여자 싱글 4차 레이스를 마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소치 로이터=뉴스1]

2, 3 메달을 따지 못해도 그들의 도전은 아름다웠다. 최선을 다한 패자를 존중하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다. 컬링 대표팀의 스킵 김지선(왼쪽), 봅슬레이 2인승에 출전한 원윤종(앞)과 서영우. [소치 뉴시스, 로이터=뉴스1]

4 바이애슬론 남자 10㎞ 스프린트에 출전한 이인복(30·포천시청)이 결승선을 통과한 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소치 AP=뉴시스]

5, 6 프리스타일 스키 여자 모굴의 서지원(왼쪽)과 스피드 스케이팅에 출전한 이보라. 1000m 경기에 나섰던 이보라는 마지막 코너에서 넘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레이스를 마쳤다. [소치 로이터·AP=뉴스1·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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