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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사람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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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글은 사람이다.” 뷔퐁의 이 말을 처음 접한 건 중학교 때였다. 국어 선생님이 내신 문집의 맨 첫머리에 실려 있었다. 글이 사람처럼 살아 움직인다는 말인가, 한 마디 한 마디 조심하란 말인 것 같다, 왜 이 말이 문집의 첫머리에 실린 걸까 등이 궁금했었다. 글을 통해 자신의 인격이나 문체를 나타낸다는 뜻이라는 그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궁금증이 풀렸던 기억이 있다.

 한참 뒤에 이 말을 한 뷔퐁이 계몽주의 시대인 18세기 프랑스 자연과학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과학이 눈부신 발달을 이루고, 합리성과 이성이 강조되던 시대였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지식이 넘쳐나고, 여기저기서 다듬어지지 않은 말들도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대해 뷔퐁이 경종을 울리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글은 자기 생각에 질서를 주는 것이고, 분명하고 통일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에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잘 생각하고, 잘 느끼고, 잘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생각뿐 아니라 감정도 함께 담는 것이기에 글이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는 얘기다. 자연과학자였지만 글 안에 담기는 인격과 격조도 생각했던 것 같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기원전 4세기께 아테네에는 민주정치가 번창하기 시작했다. 여러 지역에서 문화적 기반이 다른 많은 사람이 모였고, 정치적 토론이나 인간관계들도 다양해졌다. 당시 사람들에게 말하는 법이나 설득하는 기술을 가르쳤던 이들이 소피스트들이다. 이들은 실용성을 소중한 가치로 삼았으며, 쓸모 있고 현실적인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으며, 진리란 문화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한 프로타고라스가 대표적인 사람이다. 흔히 궤변론자로 불리는 이들을 맹렬히 비판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절대불변의 진리를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지금은 한 쪽은 현실을 더 강조했고, 다른 쪽은 이상을 더 강조했던 입장 차이였던 것으로 이해한다. 소피스트들이 감정을 절제한 채 자신의 생각을 냉정하고 설득력 있게 나타내려 했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생뚱맞게 계몽주의와 그리스 민주정치 얘길 꺼낸 건 지금 우리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막말이 난무하고 있다. 정치인, 방송인, 회사원, 일반인의 구분도 없다. 논리는 물론이고, 상대방을 설득하자고 하는 말도 아니다. 그러니 험담과 욕설 그 자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식당에서 나이 든 종업원에게, 기업의 사장이 호텔의 직원에게, 회사의 영업사원이 대리점 주인에게 했다는 많은 막말과 욕설들. 원인이 무얼까? 돋보이고 싶고, 우월감을 나타내고 싶어서인 것 같다. 더 뼈아픈 건 모든 인간관계를 갑과 을의 관계로 재단하려는 습관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단골로 등장한다. 전직 대통령에게 퍼부었던 막말들, 그와 비슷한 말들이 현직 대통령에게 지금도 쏟아져 나온다. 도를 넘어서기도 한다. 이래선 안 된다. 의견이 다르든 일치하든 우리가 뽑은 대통령인데, 우리 얼굴에 침 뱉는 격이 아닌가? 내가 다르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 하면서 남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건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문화, 진영논리와 자기 정당화만 앞세우는 문화 탓이 아닐까.

 300년 전이나 2500년 전이나 그리고 지금이나 다른 의견으로 다투는 일은 있을 수 있다. 남과 내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같은 게 너무 많다면 오히려 그것이 비정상일 수 있다. 하지만 방법이 중요하다. 지금은 표현 수단이 더 다양해졌고, 더 빨리 전달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참을성은 더 없어진 탓이 아닐까? 조금만 참고, 냉정하게 생각하고 글이 곧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뷔퐁의 말을 들려주신 그 선생님이 지금쯤은 글은 사람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지 않을까? 말 한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에 입히는 상처가 몸에 입히는 상처보다 더 깊고 오래간다는 뜻에서. 진리는 아니더라도 감정을 절제하고 논리를 세워 상대방을 설득하는 토론문화가 그리운 때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