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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박테리아가 말을 한다면 "내가 인간의 뿌리"라고 할 텐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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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SF영화 스타워즈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 ‘제국의 역습’에서 ‘다스 베이더’는 ‘루크 스카이워커’와 결투하면서 “I am your Father!”라고 말한다. 박테리아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위키피디아]

“May the Force be with You!(늘 힘이 당신과 함께하기를!)”

영화 ‘스타워즈’의 팬들끼리 즐겨 하는 인사다. 초기 영화에서 포스(Force)는 뭔가 영적(靈的)인 것으로 설정됐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 조지 루커스는 후기 영화에서 팬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어설프게나마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들었다. 포스가 ‘미디클로리안(midichorian)’이란 물질의 산물이란 것이다. 정의로운 ‘제다이’ 기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미디클로리안은 살아있는 모든 세포에 들어 있으며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생명체다. 우리는 미디클로리안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共生)관계에 있다. 미디클로리안이 없으면 생명은 존재할 수 없으며 우리와 함께할 포스도 없다. “역사상 가장 높은 미디클로리안 수치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아나킨 스카이워커’로 세포마다 2만 개체가 넘는다”고 설정한다.

박테리아, 태양의 5000만 배 에너지 생산

1g(그램)의 질량에서 1초 동안 발생시키는 에너지가 태양은 0.000002W(와트)에 불과하지만 사람의 몸은 1000배 많은 0.002W다. 그리고 박테리아(세균)는 태양보다 자그마치 5000만 배나 많은 10W를 생산한다. 이렇게 뛰어난 효율을 생각하면 박테리아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은 아주 자연스럽다. 사람의 에너지 효율이 태양보다 1000배나 높은 것은 역시 우리 세포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에너지를 생산해 주는 박테리아 덕분이다. 그 박테리아의 이름이 바로 ‘스타워즈’의 미디클로리안을 연상시키는 미토콘드리아다.

보통 박테리아의 크기는 우리 몸 세포의 10만 분의 1에 불과하다. 미토콘드리아 역시 1억 개를 모아야 모래 한 알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작다. 우리는 세포마다 수백∼수천 개의 미토콘드리아를 갖고 있다.

사람의 세포 안엔 다양한 막(膜) 구조들이 있지만 미토콘드리아의 생김새는 아주 특이해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이중막(二重膜)을 가지고 있다. 안쪽의 막은 주름졌기 때문에 표면적이 바깥쪽 막보다 훨씬 크다. 이것은 여기에서 뭔가 중요한 활동이 일어난다는 것을 암시한다. 미토콘드리아는 몇 ㎚(나노미터·1㎚=10억분의 1m) 두께의 막을 통해 양성자(수소 핵)를 수송해 양성자의 농도 차(差)를 만든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양성자가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흐르는데 이때 막에 있는 버섯 모양의 단백질을 지나게 된다. 댐 위의 물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전기가 생산되듯이 양성자가 단백질을 지나면서 ATP라고 하는 생활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생명체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지구의 생명은 크게 세 가지 도메인(domain)으로 나뉜다. 박테리아와 고세균(古細菌·단세포로 구성된 미생물의 한 종류) 그리고 진핵(眞核)생물이 그것이다. 주로 극한(極限) 환경에서 사는 고세균은 어떤 점에서는 박테리아와 닮았고 어떤 점에서는 진핵생물과 닮았다. 고세균은 핵막이 없는 원핵생물이라는 점에선 세균과 같지만 유전자 복제와 단백질 합성은 진핵세포와 비슷하다.

진핵생물은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생명체다. 동물·식물과 곰팡이 같은 균류(菌類)들이 여기에 속한다. 진핵생물은 세포 안에 유전자를 보관하는 핵막(核膜)이 따로 있다는 점에서 나머지 두 도메인과 다르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미토콘드리아가 있다는 것이다.

박테리아는 자기 복제를 통해 번식하기 때문에 유전자의 변이(變移) 속도가 느리다. 진핵생물은 환경에 적응하고 생명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장치로 성(性)이란 장치를 발명했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을 통해 번식한다. 이때 결합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크기가 작아서 활동적인 정자와 커서 활동성은 떨어지지만 발생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난자로 역할을 나눴다. 미토콘드리아는 난자에만 존재한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죽는다. 이를 아포톱시스(apotopsis·세포 자살)라고 한다. 기운을 다하거나 손상을 입은 세포를 분해하고 재활용하는 이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다(多)세포 생물 전체의 보존과 결속에서 필수적이다. 아포톱시스가 일어나지 않으면 암이 발생한다. 그런데 아포톱시스를 결정하는 것은 핵에 있는 유전자가 아니라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다. 만약 미토콘드리아가 없었다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는 박테리아 수준을 넘어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토콘드리아. 미토콘드리아는 고세균(古細菌)에 포획된 박테리아(세균)다. 자기 생명 유지에 필요한 많은 부분을 고세균에 떠넘긴 대신 생활 에너지(ATP)를 제공한다. 고세균과 박테리아의 공생은 진핵생물의 출현을 가져왔다.

광합성 하는 엽록소도 박테리아서 유래

그런데 미토콘드리아는 언제 어떻게 진핵세포 속에 들어왔을까? 이야기는 다시 최초의 지구로 돌아간다. 46억 년 전 우주의 먼지 속에서 탄생한 지구는 붉은 용암 덩어리였다. 태양계는 혼돈 그 자체였다. 혜성과 소행성들이 태양계의 행성들과 충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태양계는 서서히 안정화됐다. 붉게 달아오르던 지구 역시 차갑게 식으면서 표면은 평균 깊이 4㎞의 얕은 바다로 살짝 뒤덮였다. 탁한 바다에 떠다니던 기름 막 안에 작은 RNA 조각들이 들어왔다. 이 RNA가 지구에서 생겨났는지 아니면 우주를 떠돌던 혜성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RNA엔 전달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와 그 정보를 전달할 최소한의 효소 기능이 갖춰져 있었다. 지구의 바다에 바다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존재가 생긴 것이다. 마침내 지구에 생명이 탄생했다.

주변 환경과 구분된다는 것은 환경에 거슬러 에너지를 획득하는 독자적인 장치를 갖는다는 뜻이다. 이제 최초의 생명은 생명 유지와 진화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어야 했다. 그런데 어디서? 동물들이 사용하는 산소 호흡은 아직 불가능했다. 바다와 대기에 산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광합성 역시 시아노박테리아로부터 시작하므로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최초의 생명체가 발효(醱酵·fermentation)를 이용했을 리도 없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의 보편적 조상(LUCA·the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이 발효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제기한 찰스 다윈은 “모든 생명체는 각자가 하나의 작은 우주다. 이 우주들은 자가 번식하는 유기체들로 이뤄졌다. 이 유기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고 했다. 우주생물학의 창시자인 칼 세이건의 아내이자 동료였던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이런 다윈의 말에서 따와 1970년대에 “모든 생명체는 공생하는 세균들이 연합해 만든 작은 우주”라고 주장했다. 이 연합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우리는 작지만 중요한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지금부터 20억 년 전 지구 바다의 어느 구석엔 이웃해 살고 있는 메탄(methane) 생성 고세균과 알파프로 박테리아가 있었다. 알파프로 박테리아는 다른 박테리아의 노폐물을 발효시켜 에너지를 생산했다. 이 과정에서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메탄 생성 고세균은 이산화탄소와 수소만 있으면 필요한 에너지와 모든 유기물을 스스로 합성하고 대신 메탄을 배출했다. 따라서 메탄 생성 고세균과 알파프로 박테리아는 ‘이웃사촌’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메탄 생성 고세균이 알파프로 박테리아를 꼭 껴안았다.

알파프로 박테리아가 내놓는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최대한 많이 얻겠다는 ‘심보’였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알파프로 박테리아는 메탄 생성 고세균과 접하지 않은 표면에서만 먹이를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메탄 생성 고세균에 붙잡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먹이를 얻기도 힘들어진 알파프로 박테리아는 아예 메탄 생성 고세균 몸 안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운이 좋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메탄 생성 고세균은 제 발로 들어온 알파프로 박테리아를 소화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바다에서 먹이를 흡수해야 했으므로 알파프로 박테리아는 먹이를 흡수하는 데 필요한 모든 유전자를 메탄 생성 고세균에게 넘겼다. 배가 고파서 이웃을 삼킨 메탄 생성 고세균은 오히려 알파프로 박테리아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이때 발생하는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자기 에너지를 생산할 수도 있었다. 결국 두 꾸러미의 유전자를 갖게 된 메탄 생성 고세균은 굳이 더 이상 메탄 생성 고세균으로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바닷속의 산소 농도도 높아졌다. 메탄 생성 고세균은 다른 고세균과의 경쟁을 피해 산소가 풍부한 수면으로 올라왔다.

알파프로 박테리아가 바로 미토콘드리아의 조상이다. 그리하여 미토콘드리아가 있는 모든 진핵생물, 즉 우리가 아는 모든 동물과 식물, 곰팡이를 비롯한 균류가 생겼다. 이야기를 꾸미기 위해 의인화했지만 생명의 진화엔 아무런 목적이 개입하지 않는다. 무수한 우연의 연속일 뿐이다.

식물세포 안에서 광합성을 일으키는 엽록체 역시 미토콘드리아와 마찬가지로 박테리아에서 기원했다. 미토콘드리아처럼 이중막으로 이뤄졌으며 자기 몫의 유전자와 단백질 조립장치가 있다.

막대한 DNA 축적, 다세포 생물로 발전

진핵생물은 박테리아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박테리아는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알 아니면 막대 모양이다. 하지만 진핵생물은 역동적인 세포 골격을 이용해 다양한 형태 변화를 일으켰다. 박테리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대형화됐다. 엄청난 양의 DNA를 축적해 다세포 생물로 발전했다. 결국 긴 여정을 거쳐 인류도 탄생하게 된다. 인류 탄생의 첫걸음은 고세균과 박테리아의 공생이었던 것이다.

“같이 살자!” 진핵생물이라면 이건 기본이다. 어머니 같은 청소노동자들에게 작은 쉴 공간 하나 마련해 줄 여유가 없는 우리들에게 기대하기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우리가 같이 살아야 할 대상은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 그리고 나아가 박테리아까지도 포함된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진핵생물은 박테리아의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박테리아들은 어쩌면 ‘스타워즈’의 가장 유명한 대사를 우리에게 읊고 싶을지도 모른다.

“I am your Father!”(나는 당신의 아버지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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