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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창연한 명 · 청 시대 풍경들 도시의 물길 따라 꿈같은 시간여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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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호 08면

중국 양쯔강 하류 이남의 항저우(杭州)와 쑤저우(蘇州) 일대는 일찍이 운하와 수로가 발달했다. 수나라 양제가 항저우부터 베이징(北京)까지 무려 1794㎞에 달하는 경항(京杭)운하를 만든 것이 지금부터 1400년 전의 일이다. 호수와 하천에서 뻗어나온 물줄기가 굽이치는 곳마다 크고 작은 마을이 생겨났는데, 영화 ‘미션 임파서블3’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시탕(西塘)을 비롯해 퉁리(同里), 저우좡(周莊), 주자자오(朱家角), 우전(烏鎭) 등이 대표적인 수향(水鄕)으로 꼽히는 곳이다. 여전히 배가 주요 교통수단인 이들 도시는 고속도로와 자동차로 대표되는 ‘근대화의 선물’을 받지 못한 채 옛 모습을 대부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물질 문명이 첨단으로 치달으면서 이 같은 ‘낙후성’이 오히려 놀라운 매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통과 럭셔리의 조화 … 1300년 운하도시 중국 우전(烏鎭)을 가다

특히 우전은 전통과 현대, 아날로그와 디지털, 촌스러움과 호사스러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중국 정부로부터 가장 높은 등급(AAAAA)을 받은 최고의 관광휴양지로 탈바꿈했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바꾼 것일까.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국에는 아직 거의 알려지지 않은 우전 웨스트(西柵)와 이스트(東柵)를 중앙SUNDAY가 다녀왔다.

1 우전(烏鎭)이라는 글씨를 담아 짠 대나무 입간판

명청시대 저택 내부 초현대식 호텔로 꾸며
중국 저장(浙江)성 우전(烏鎭)은 역사가 1300년에 이르는 운하도시다. 상하이와 항저우, 쑤저우를 연결하는 삼각형의 한가운데에 있다. 상하이 홍차우 공항에서 차로 1시간 반 가량을 달려 우전 웨스트(西柵)에 도착했다. 고색창연한 2층 목조건물에 중국어와 영어로 ‘우전 비지터 센터’라고 써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천장에 달린 화려한 용과 봉황 조각물이 내방객을 맞는다. 입장권은 120위안(약 2만1000원). 우전 이스트(東柵)까지 둘러볼 수 있는 티켓은 150위안(약 2만6000원)이다.

이 대목에서 우전 웨스트와 이스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우전 출신의 정치인이자 공산당원인 천샹훙(陳向宏51)이 우전 이스트 개발을 시작한 것이 1999년. 그는 청나라, 심지어 명나라 시절 지은 목조 가옥과 석조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많은 주민이 잠사·양조·염색 등 전통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주민들을 모두 내보내고 건물들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 뒤 다시 입주시켜 2001년 문을 열었다. 모든 운영은 우전 투어리즘 컴퍼니가 총괄하고 있다. 사회주의식 중앙집중제의 강점을 극대화한 셈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옛날 공간을 찾은 중국인들은 걷거나 배를 타고 다니며 조상이 남긴 정취와 그 속에서 맥을 잇고 있는 전통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고 또 그렇게 만든 물건을 구입하는 독특한 경험에 푹 빠졌다.

우전 이스트의 엄청난 성공으로 2004년 우전 웨스트 개발이 시작됐다. 규모가 세 배로 커졌지만 천 사장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 더 보탰다. 그냥 둘러보고 가는 공간으로는 한계가 있다. 편히 쉬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더 많은 사람이 올 것이다-. 그렇게 숙박 시설을 넣다 보니 관광단지는 24시간 가동해야 했다. 뜨내기 관광객이 돌아가고 남아 있는 숙박객들을 위한 운치 있는 야경(夜景)이 가장 중요했다. 2007년 문을 연 우전 웨스트의 야경이 중국에서 손꼽히게 된 이유다.

3 수백 년 된 목조 가옥 속에 마련된 화려한 시설
2 전망대를 겸하는 백련탑

가장 비싼 스위트룸, 하루 숙박비 1018만원
비지터 센터에 짐을 맡기고 4인승 배에 몸을 실었다. 걸어갈 수도, 전기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운하 도시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 일부러 배를 택했다. 짐은 숙소로 옮겨질 터였다. 사공에게 가능한 한 천천히 노를 저어 달라고 부탁했다.

도착한 날은 마침 일기가 좋았다. 강남(江南)의 하늘은 파랬고 1월 하순인데도 봄 날씨 같았다. 봄이 오는 길목을 서성대며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천 옆 능수버들이 언뜻 초록색으로 반짝였다. 우전 투어리즘 컴퍼니의 세일즈 담당인 제시카가 영어로 설명을 시작했다.

“우전 웨스트는 한가운데 운하를 중심으로 양안에 단지가 구성돼 있습니다. 메인대로의 길이는 1.8㎞. 수로의 총 길이는 10㎞, 깊이는 3m에 이릅니다. 저기 여러 명이 탄 수상 버스는 1인당 1정거장에 10위안이고요. 여기 허공에 붙어 있는 돌 계단은 배에서 집으로 쉽게 오르내리게 하기 위해 수백 년 전부터 있던 것들이죠.”

배를 타고 가며 보니 주변이 그야말로 옛날식 목조 가옥들이다. 이 중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은 민숙(民宿)이라 불리는 민박집으로도 사용된다. 겉은 허름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웬만한 호텔 뺨치는 깔끔한 시설을 갖춰놓았다는 설명. 단지 내 호텔에 비해 값이 싸고 주인장의 정성 어린 요리까지 즐길 수 있어 한두 달 전 예약은 필수다. 전체 리모델링을 하면서 웬만한 시설은 땅 속에 설치했다고 하더니 집집마다 나무 난간 아래로 달아놓은 에어컨 환풍기들이 보였다. 그런데 달려 있는 높이가 물 위 30cm도 채 안 돼 보였다. 운하의 수위 조절을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는지 웅변하는 장면이었다.

사공이 호텔 근처 정거장에 내려주었다. 전망대로 활용되는 로터스 타워(白蓮塔)를 지나 숙소인 덕사이드 부티크 호텔로 들어갔다. 겉은 그저 그런 2층 목조 건물인데 속은 온통 대리석이다. 우전의 건물은 모두 이런 식이다. 겉은 예스러운데 속은 최첨단이 주는 조화가 돋보였다.

4 최고급 호텔인 에덴 클럽하우스의 스위트룸

이곳의 숙소는 SLH(Small Luxury Hotel)클럽에 가입된 최고급 럭셔리 호텔, 일반 호텔, 유스호스텔, 민숙으로 구성된다. 총 1453개의 룸이 있다. 제일 좋다는 럭셔리 호텔로 가보았다. 에덴 클럽하우스는 방 한가운데 침대 옆에 커다랗고 하얀 둥근 욕조가 눈에 띄었다. 천장은 개폐식으로 돼 있어 낮에는 하늘을, 밤에는 별을 볼 수 있다. 물론 창문을 열면 바로 운하다.

가장 비싼 방은 워터사이드 리조트의 독채 프레지덴셜 스위트 룸으로 하루 5만8000위안(약 1018만원). 집 가운데에는 정원이 아니라 호수로 꾸몄고 주변을 용머리 금장식 기와로 둘러쌌다. 2011년 오픈한 이래 지금까지 두 번 사용했다. 집안에는 2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었다. 식사 때면 요리사가 와서 요리를 해준다고 했다.

5 가마우지로 물고기를 잡는 어부 6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아낙네 7 초상화를 그려주는 공방 8 염색한 남색꽃천을 말리는 모습 9 비단솜을 말리는 풍경 10 쇠락한 담벽 뒤에 있는 최고급 호텔 힐타운 클럽하우스의 정문

깨끗하고 아기자기한 골목길, 시간이 멈춘 곳
서책대로는 오랜만에 보는 골목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수도, 이 집엔 또 무엇이 있나 한참을 둘러볼 수 있는 자유가 그곳에 있었다. 무엇보다 깨끗했다. 관광객이 휴지라도 떨어뜨릴라치면 어딘가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노인이 득달같이 나타나 바로 치우곤 했다. 공중 화장실에는 기다리는 사람을 위한 소파도 보였다.

중국의 전통을 보여주고, 체험하게 하고, 정찰제로 파는 시스템은 우전의 특징이었다. 누에고치에서 번데기를 꺼내고 손가락을 집어넣어 비단 솜을 만드는 모습이 지겨워지면 대나무를 깎아 잠자리를 만드는 인근 할아버지 가게로 옮기면 그만이었다. 인디고 블루로 염색한 남색꽃천이 어떻게 물들여지는지 보다가 카페로 자리를 옮겨 흐르는 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저장성의 명물이라는 따끈한 흰 국화차를 즐기는 것도 좋았다.

대로에서 사이사이로 난 작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가장 갖고 싶은 발 크기가 11cm였다는 중국 남성들의 염원을 담아 기묘하게 작은 버선들을 전시해놓은 전족박물관은 왠지 무섭고 슬퍼서 금세 나와버렸다.

수백 년 세월의 더께가 앉아 있는 72개의 두툼한 돌다리 중 하나를 건너니 ‘女紅街’라는 예쁜 간판이 보인다.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아기자기한 제품 가게가 많은 골목이라는 뜻이란다. 각종 장신구, 공예품, 액세서리 가게가 줄을 이었다.

강물에 비친 불빛과 새벽 거리가 주는 운치
해가 서쪽으로 저물기 시작하자 야경을 담기 위해 미리 봐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춘절 직전이라 머무는 관광객도 별로 없어 고즈넉한 시간. 가마우지로 물고기를 잡는다는 어부 할아버지가 빠르게 노를 저으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오늘 잡은 물고기로 따뜻한 식사를 준비할 터였다.

은은하게 불타오르는 조명을 받은 아치형 다리는 물에 비쳐 커다란 원을 이뤘다. 하늘의 달도 보름달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을. 매일 저녁 7~9시 광장에서 틀어주는 옛날 흑백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저녁 식사 장소는 약선요리 전문점이었다. 건강식 위주로 꾸몄단다. 무슨 요리인지 물어보니 먹고 나면 설명을 해 주겠단다. 그래서 먹어본 것들이 황소개구리 다리, 안 맵게 한 닭발, 오골계 수프, 자라찜 등이다. 이곳에서 잡힌다는 화이트 피시라는 생선의 살은 한국 생선의 그것과는 식감이 많이 달랐다. 우전의 특산이라는 삼바이주(三白酒)와 황주(黃酒)인 샤오싱도 함께 마셨는데 이상하게 별로 취하지 않았다. 몸에 좋다는 것만 먹어서 그런가.

하여 그렇게 맞은 우전의 새벽은 신선했다. 누군가 정성 들여 빗질한 공간을 걷는 기분은 특별했다. 어릴 적 학교 친구들과 새마을 청소를 마친 기분이 이랬던가. 집집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구수했다. 사공들이 배에서 식재료가 들어 있는 비닐 봉투를 집 앞 난간에 던졌다. 누군가 나와 가게 셔터 역할을 하는 기다란 쪽 나무 조각을 하나씩 떼어내고 있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기 직전의 기운으로 가득 찬, 정갈하고 너른 옛날 골목길. 이것이야말로 우전이 우리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도 몰랐다.



우전 가는 길
항저우 공항에서는 공항 리무진을 타고 우전버스터미널(乌镇汽车站)까지 이동, K350버스를 갈아탄 후 우전관광지(乌镇景区)정거장에서 하차한다. 상하이 푸둥(浦東)공항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훙차오고속열차역(虹桥高铁站)에서 하차, 고속열차로 갈아타고 퉁시앙(桐乡)기차역까지 간다. K282버스를 타고 우전버스터미널(乌镇汽车站)까지 이동, K350버스를 타고 우전관광지에서 내린다. 상하이 훙차오(虹桥)공항에서는 공항과 연결된 훙차오고속열차역(虹桥高铁站)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퉁시앙기차역까지 간다. 이곳에서 K282버스를 타고 우전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한 뒤 다시 K350버스를 타고 우전관광지에서 내린다. 국내에서는 베스트레블이 우전 여행 상품(www.wuzhen.kr)을 시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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