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세계식량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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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일부터 12일간「로마」에서 열리는 세계식량회의(WFC)는「유엔」주최 하에 세계의 식량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세계가 공동으로 지혜를 짜내자는 모임이다. 약 1백40개국의 대표들이 이 회의에 참석하여 세계의 식량사정문제를 비롯, 세계농업의 현황과 전망, 후진국의 식량증산 책, 세계식량의 안정적인 확보 책, 식량교역문제, 농업의 국제간조정 등 주요의제를 놓고 토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식량부족 국인 우리로서는 우선 이 회의가 우리 나라 자신을 비롯, 전반적으로 급박한 세계식량사정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국제협력의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을 충심으로 바란다.
사실, 오늘날 세계는 일직이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식량사정의 악화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이상기후로 인한 계속적인 감산과 많은 나라들이 저지른 농업정책의 실패, 해외잉여농산물에 대한 안이한 의존, 또 그런데도 불구하고 날로 가속화해 가는 식량소비의 증대 화 경향이 급기야는 1972년을 고비로 세계적인 식량부족 현상을 걷잡을 수 없는 불안으로 몰아넣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전체의 이 같은 식량부족 가운데서도 특히 사태가 심각한 것은 후진국의 경우라 할 수 있다. 인구비율로 봐서 세계인구의 30%에 불과한 선진국은 세계식량의 60%를 생산하고 있으며 나머지 세계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후진국들이 세계식량의 불과 40%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금 91개 후진국 중 61개국은 만성적인 영양공급 부족 국으로 지목되는 긴박한 실정에 있음을 주목해야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이른바 세계식량위기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실에 있어서는 후진국의 식량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또 세계식량문제라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후진국의 기아 위기의 문제인 것이다.
이 같은 사태는 앞으로 설사 세계의 식량사정이 다시 호전된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수출자원을 갖지 않은 많은 후진국들은 식량수출국의 식량공급이 증대한다 하더라도 외화부족 때문에 항상 식량위기에 처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 때문에 세계식량의 절대적 부족은 사태를 더 한층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세계식량회의는 단순히 전세계적인 식량공급의 증대와 안정적 학보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선진국에 편재하고 있는 식량을 어떻게 하면 굶주리는 후진국에도 골고루 분배하느냐 하는 문제를 주요의제의 하나로 삼고 있기는 하다. 사실 이대로 가다가는 후진국들은 1985년께 에는 연간 무려 8천5백만t의 식량을 수입해야 하는데 금액으로 따져 이것은 약1백70억「달러」에 달하는 것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석유무기화로 일대타격을 받고 있는 다수의 후진국들에 있어 이것은 또 하나의 감당하기 어려운 타격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식량은 이미 무기화 되었고, 양곡의 세계시장가격은 이미 오를 만큼 올랐으며, 자원 비 보유 후진국들의 경제적 파탄은 앞으로 마치 시간문제와 같은 느낌조차 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열리는 이번 세계식량회의는 물론, 본래의 취지가 사태의 완화를 위한 것이지만 자칫 그것은 위기감을 자극적으로 고조하는 효과를 통해 도리어 식량무기화를 부채질하는 결과마저 빚어낼 우려조차 없지 않다. 세계의 식량문제는 후진국의 문제인데도 세계식량회의는 그것을 세계최대의 식량공급 국인 미국이 제기하고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이를 암시하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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