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본 현직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 만났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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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44년 전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남긴 한 장의 사진은 서독의 과거 청산과 역사인식을 상징한다. 브란트는 1970년 12월 비가 내리던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을 사죄했다. 독일 지도자의 이런 노력들은 나치 시대의 각국 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독일의 보상으로 이어졌다. 2000년 독일 연방의회를 통과한 ‘기억·책임·미래’법을 통해서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11일 국회에서 일제의 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만나 “늘 건강하시라”고 한 장면은 일본 양심 세력의 신념을 떠올리게 한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은 일본의 책임 있는 정부 인사였어야 하지 않을까. 무라야마 총리의 모습을 보고 심정이 복잡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1995년 총리 재임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반성·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이다. 위안부 피해 보상을 위한 ‘아시아 여성기금’ 창설도 주도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12일엔 자신의 담화를 부인하는 각료가 있다면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힌 만큼 각료가 그에 반하는 발언을 할 때는 사임하는 게 맞다는 취지였다. 아베 내각 전체에 대한 경고였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같은 날 국회 답변에서 한국의 위안부 추모일 제정 등 문제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나열해 일본을 비방중상하는 것에는 사실로 냉정히 반론하겠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강제 연행 개입을 부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2007년 1기 내각 때의 각의 결정 연장선상에 있다. 한·일 양국에서 같은 날 드러난 일본 전·현직 총리의 역사인식 간극은 역사의 후퇴와 일본 사회의 보수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31일 국회에선 무라야마 담화 계승에 대한 질문을 받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 부분을 빼고 답하기도 했다. 아베 내각이 내건 적극적 평화주의가 의심받는 데는 자국 중심 사관이 한몫한다고 본다.

 무라야마 담화는 군 위안부를 인정하고 사죄한 93년의 고노 담화와 더불어 한·일 관계를 떠받치는 근간이다. 무라야마 담화가 있었기에 새 한·일 관계를 연 98년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도 가능했다. 아베 내각이 두 담화의 정신에 입각했다면 한·일 관계가 현재처럼 꼬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군 위안부 문제 해결은 한·일 대치국면을 타개할 출발점이자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한·일 양국은 이미 군 위안부 피해 대책 문제를 깊숙이 절충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말기 때는 노다 요시히코 내각과 타결 직전까지 갔었다. 박근혜 정부도 지난해 말 아베 내각과 일본 총리의 사죄 편지 등을 축으로 협상해 왔으나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교섭이 중단됐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무라야마 전 총리의 방한이 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을 회복하고, 오욕의 기억을 치유하는 협상 재개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