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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유 있는 수인… 그 고달픈 직무의 애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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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창살 없는 죄수」-. 교도관을 두고 부르는 말이다. 높다란 교도소 울에 갇혀 푸른 옷의 재소자들과 함께 행동하는 교도관들은 그들 자신이 바로 죄수 생활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불려지는 별명이다. 지난 17일 영등포 지원에서 있었던 피고인의 법정 살인 사건을 계기로 교도관의 계호 문제, 직무 자세 등과 아울러 그들의 근무 조건, 처우 문제를 제기했다. 이 사건은 행형 60년의 고질을 단적으로 드러내기는 한 것이나 현재 교도관들의 어려움 박봉에 격무, 직업에 대한 사회의 몰 인식, 게다가 제도의 결함까지 겹친 가운데 교도관들이 겪어야 하는 문젯점 및 개선책은 너무나 많다.
19일 상오 5시. 무악산 기슭은 아직도 어둑어둑하다. 새벽 한기 속에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산꼭대기의 시민 「아파트」를 나선 서울 구치소 출정과 한태성 교도(39·5급 갑)는 올해로 꼭 12년째 「죄 없는 죄수」생활을 하고 있다.
이날은 8·15저격 사건의 범인 문세광의 선고 공판이 있는 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 근무령 때문에 평상시 출근 시간보다 2시간이나 빨리 구치소에 나가야 했다. 간밤에도 보안 점검 때문에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머리 헤아리기」를 반복>
비상근무가 아닐 때도 매일 상오 7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한다. 전날 법원과 검찰에서 넘어온 당일 출정 피고인 및 검취 피의자 명단을 정리하고 상오 8시까지는 70여명의 교도원의 인원 점검을 마쳐야 한다.
하루 평균 피고인 및 피의자 소환은 4백명. 이들 미결 재소자들을 집합시키고 나면 한명 한명에 대해 오물 및 흉기 소지 여부를 가리는 검신. 그리고 나면 한 교도의 감독 아래 또다시 점호를 하게 된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수감자들은 열 지어 선 다음에 차례로 앉으면서 번호, 다시 일어서면서 번호. 출정자가 바뀌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머리 헤아리기」가 반복되기 때문에 어느덧 구치소 안에서는 교도관은 『헤어 조진다』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어 출정 교도관의 배치표와 호송표가 작성되면 한 교도는 호송 「버스」1대에 50∼60명씩 태운 뒤 첫 「버스」로 법원 구치감에 도착한다. 이때가 하루 중 밝은 햇빛과 공기를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 계호 교도관 수는 재소자 9명에 1명 꼴로 잠시도 감시를 게을리 할 수가 없다.

<퇴근 땐 눈 저절로 감겨>
상오 10시 공판 개정에 맞추어 모든 재소자들의 입정을 마치고 나면 이번에는 검찰 쪽에서 취조 대상자 호출이 시작된다. 『○○호 검사실에 ○○○등 2명』 「메모」를 받아 구치 감방에 알리며 전화를 놓기가 무섭게 또 『따르릉』 이번에는 『○○호실에 5명…』. 한 교도의 책상은 마치 큰 작전을 지휘하는 사령실의 그것처럼 각종 배치표·일지·점검부·연출증 등이 어지럽게 쌓인다. 마치 통금 해제 직후의 어물 시장 같은 소란이 지나고 나면 한 교도는 다시 8개 법정을 순시하며 혹시나 조는 직원이 없는가 살펴보아야 한다.
점심시간이 지난 하오 2시 넘어 오전에 일이 끝난 출정자들이 돌아오면 하나하나 검신을 하고 60명씩 채워 「버스」에 실어 다시 구치소에 보내면 오후 공판과 검사 취조 준비를 해야 한다.
하오 5시 30분 법원과 검찰을 두루 돌아다니며 다음날의 출정 인원을 받아 적는다. 퇴근 시간이 지났어도 재판이 계속되거나 야간 취조가 진행되는 경우는 너무도 많다.
하오 7시 30분까지 이들을 기다려 마지막 「버스」 편으로 돌려보낸 뒤 잔무 처리를 하고 8시쯤 집에 돌아갈라치면 두 어깨가 짓눌리다 못해 온몸이 솜처럼 노곤하다. 눈이 저도 모르게 감긴다.
교도관의 직무 규정은 24시간 근무 후 하루를 쉬는 격일 근무제. 그러나 명목상의 규정일 뿐 직원 수가 모자라 다음날도 계속 근무, 36시간이란 계속 격무를 치러야 한다.
출정과의 전춘광 교도보(31·5급 을)가 집에 돌아가는 것은 사흘에 한번. 24시간을 꼬박 근무하고 다시 보안과 보조 비번 근무로 들어간다. 앞으로 12시간을 재소자들이 있는 사방 주위의 복도·출입구를 동초로 근무해야 한다.
교도소의 곳곳엔 밝지도 못한 발가숭이 전구가 갓도 없이 매달려 있다. 전 교도보는 어둑어둑한 사방 복도가 마치 긴 동굴과 같다고 느낀다.
자정-. 24개의 사방을 둘러보고 자물쇠가 잠겨 있는가를 다시 확인한다. 복도 끝까지 왔을 때 전 교도보는 사방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통하는 쇠 철문도 굳게 잠겨 자신도 창살 속에 갇힌 죄수의 신세인 것을 실감한다.

<악취 풍기는 사방 근무>
재소자들의 자해를 막기 위해 창문을 막아 놓은 「비닐」이 찢어져 냉기가 쏟아져 들어온다.
감방 안에서 『드르렁드르렁』코를 골며 자는 재소자가 오히려 부러울 지경.
한겨울 발을 비비고 있을라치면 『추운데 고생이 많수다』며 오히려 수감자로부터 위로를 받는다고 전 교도보는 쓴웃음을 진다. 겨울의 추위뿐 아니라 여름이면 「시멘트」 벽돌에 까지 스며든 땀 냄새와 인분의 악취로 처음 사방 근무를 하는 교도관은 그 역겨움에 한번쯤 토해 버리고 만다.
『「캡슐」 속에 갇힌 반 인간의 생활이지만 어찌 미운 정 고운 정이 없겠습니까.』 며칠 전 정성껏 보살폈던 전파 3범의 출옥수가 새 사람이 되어 청자 두 갑을 사 들고 인사를 왔을 때 지난 6년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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