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당 1만5천원 대의 추곡 수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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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농업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4할이나 된다 하고 무역 수지가 만성적으로 큰 적자폭을 보여주고 있는 경제가 식량 수요의 무려 3할 이상을 외곡 도입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면 정책의 우선 순위는 당연히 획기적인 식량 자급책부터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식량 자급책은 비단 국내 수요를 위한 안정적이며 확실한 공급원의 확보라는 견지에서뿐만 아니라 외화 절약을 위해서도, 그리고 농업 노동력의 활용을 위해서도 경제 시책상 최우선 순위가 주어져야 할 매우 긴요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의 경우, 연간 무려 3백20만t이라는 막대한 양의 외곡을 도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올해의 외곡 도입은 3백20만t은 금액으로 따지면 무려 7억2천만「달러」나 되는 엄청난 것이다. 이만한 금액의 외자를 벌어들이려면 적어도 그 배가되는 금액의 상품 수출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올해 상품 수출 목표액 45억「달러」의 약3분의 1은 외곡 도입을 위한 것이라 하여 좋을 것이다.
획기적인 식량 자급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는 획기적인 식량 증산책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최대한의 증산을 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있어서도 으뜸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농민의 증산 의욕을 북돋워 주고 한계 농지의 확대를 가져오게 하는 농산물 가격 정책을 적극적으로 쓰는 일이다. 또 농민에게 유리한 가격 정책을 쓸 때 비로소 농업 기술의 향상도, 종자 경신도, 노동력의 집약적 투입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올해 정부의 쌀 수매 가격은 벌써 추수기에 들어서기 시작하였는데 아직 결정을 못보고 있으며 시장 가격을 하회하는 가마당(80㎏) 1만5천원선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고식적인 태도를 묵수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로써는 식곡 증산을 고취하는 가격 정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누누이 지적돼 오던 터이다.
당국에서 거론되고 있는 수매가 책정의 기준은 농업 구입 가격의 상승율, 농가 교역 조건, 양곡 관리 기금의 적자 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농가 구입 가격 상승율이 30%이므로 쌀값도 그 정도로 올려 주면 되고, 지난번의 맥류 수매가를 30%올려 주었으므로 농가 교역 조건이 호전되었으니 쌀값을 농가 구입 가격 상승율 이상으로 올려 주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으며 또 양곡 관리 적자가 총4백50억원으로 증가할 것이므로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사건들은 모두 쌀값을 저수준으로 묶어 두기 위한 구차스런 구실밖에 안 되는 것이며 농민의 증산 의욕을 고취하는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쌀값을 가능한 최고 한도로 올려 주기 위한 근거를 찾아보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되도록이면 올려 주지 않기 위한 구실을 찾고 있는 것과 갈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러한 근거로 책정될 수 있는 쌀값이 현실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시장 시세를 하회한 것이라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문되고 있는 올해 추곡 수매 가격 논의는 농산물 가격의 지지책이 아니라 하향 조작을 위한 것이 되고 있으며 감산 유도 정책이라는 혹평을 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올해 쌀값은 내년의 농업 생산을 대폭 늘릴 수 있는 높은 선에서 책정되어야 한다. 물론 그럴 경우 도시민의 부담 증가가 문제가 되겠지만 식량 사정의 계속 악화를 막기 위해, 그리고 소비 절약을 위해서도 우리는 이 길을 감수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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