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돕던 의대 교수의 추락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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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성이 떨어지는 진단서로 논란이 됐던 연세의대 박 모 교수(55)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그는 전문과목 의사의 협진 의견서를 무시하면서까지 형 집행정지를 도와 파문이 컸다. 그는 여대생 살인청부사건으로 유명한 사모님 윤길자씨의 주치의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 12부(김하늘 부장판사)는 기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박 교수에게 집행유예 없이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사실상 허위진단서 작성 혐의를 상당부분 인정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의사의 재량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척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안은 의료계에서 상당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의료인이 사실을 조금씩 바꿔 진단서를 작성한 사례”라며 “어디까지를 허위진단으로 판단하는지에 대한 선도적 판결이 될 것이다. 재판부에서도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진단서는 기본적으로 환자의 건강상태에 대해 전문가인 의사의 판단을 담은 일종의 감정서다. 때문에 허위 진단서에 대한 판단은 보험금 수령을 목적으로 한 진단서 의뢰 등 비교적 판단근거가 명백한 경우에만 적용됐다.

관련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허위에 대한 판단 범위를 사실은 물론 규범까지 확대적용한 것으로 해석했다. 재판부는 “박 교수가 윤길자씨의 수감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은 규범적 문제로 허위 진단서 작성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의사가 가진 전문지식에 대한 기본적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며 “허위사실 판단의 객체가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진단서는 민·형사 사건은 물론 국가 유공자 해당 여부, 산업재해 판별에 중요한 증거다. 특히 건강상태를 확인하는데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법원은 “이런 이유로 허위 진단서를 작성할 때 의료인을 형사처벌하는 규정을 특별히두고 있는데다, 이로인해 처벌을 받을 때 의료법상 결격사유로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박 교수가 3차례의 허위 진단서 발급 혐의 중 유방암 수치 관련 소견을 제외한 2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2010년 7월 진단서에서 '압박 골절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라고 기재돼 있다. 하지만 타과 진료에서는 '요추 상태가 안정돼 더 이상 다른 치료를 요하지 않는다'는 소견이 있고, 윤씨가 입원생활에서 가족과 식사 등을 이유로 병실을 무단 이탈하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또 박 교수가 윤씨가 ▶67세 고령인 점 ▶신체적 허약 상태 ▶퇴행성 골다공증 ▶불면증 ▶파킨슨병 진단으로 수감생활이 몸 상태에 극심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작성한 진단서 역시 허위 진단서 판정을 받았다. 재판부는 “파킨슨병 진단은 신경과 협진 결과와 상반되고 치료가 끝났거나 발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항에 대해 환자가 그 병을 앓고 있으며 집중 입원치료가 필요한 것처럼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금품을 주고 받은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기소 당시 검찰은 윤씨의 남편인 류모 회장이 미화 2만 달러를 인출한 날 박 교수가 1만 달러를 입금한 점, 같은 날 세브란스 인근 음식점에서 류 회장이 점심값 10여 만원을 계산한 점을 들어 금품이 오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세브란스 병원 조사 결과 당시 박 교수의 동선이 다 파악됐다”며 “당일 오후 12시 35분까지 수술한 것으로 돼 있는 박 교수가 44분까지 음식점으로 이동해 식사를 한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직접적인 증거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한편 박 교수측은 실형 선고에 유감을 표하고 항소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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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byjun3005@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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