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hi] '소치 4륜기' 러시아 시청자는 못 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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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소치 올림픽 개막식에서 오륜기가 펼쳐지지 않은 채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소치 로이터=뉴스1]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이룩한 영광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진심은 적어도 세계 네티즌들에겐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7일(현지시간) 소치 겨울올림픽 개막식 이후 인터넷엔 푸틴 대통령과 소치올림픽을 조롱하는 패러디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특히 개막식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던 올림픽 오륜기가 제대로 펼쳐지지 않은 사고에 대한 다양한 풍자 콘텐트가 인기다.

 각 인터넷 사이트엔 ‘소치 사륜기’가 인기 패러디로 떠올랐다. 개막식 후 몇 시간 만에 미국의 온라인 쇼핑몰에 ‘사륜기 티셔츠’가 상품으로 등장했다. 여기에 러시아 국내 방송에선 오륜기가 모두 펼쳐진 것으로 방영된 것도 놀림거리다. AP통신에 따르면 올림픽 개막식을 중계한 러시아 국영방송 채널1은 오륜기가 펼쳐지지 않자 사전에 촬영된 영상으로 대체해 송출했다. 러시아 시청자들만 이 사고를 제대로 보지 못한 셈이다. 대체 사실에 대해 개막식 총감독인 콘스탄틴 에른스트는 기자회견에서 “이미 알려진 비밀”이라며 “소중한 올림픽의 상징물을 보호하기 위해선 필요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오륜기가 펼쳐지지 않은 것은 개막식 참석을 거부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퍼포먼스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필 미국이 있는 아메리카대륙 링(적색)이 펼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없이도 잘할 수 있다”는 푸틴의 숨은 의지 표명이라는 것이다.

 소치올림픽 풍자 콘텐트는 개막 전부터 심심치 않게 등장해 왔다. 푸틴의 반동성애 정책과 표현의 자유 억압 논란, 올림픽과 관련된 부패 의혹 등이 끊임없이 빌미를 제공해 왔다. 소치올림픽의 문제점을 수집하고 있는 사이트도 여러 개 가동 중이다. 이 중 트위터의 소치문제(@SochiProblems) 계정은 4일 만인 9일 현재 팔로어가 32만 명을 넘었다. 이 계정은 녹색 스프레이를 뿌려 풀밭으로 위장한 녹지, 2개의 변기가 나란히 놓인 화장실, 낚시 금지 표시가 붙어 있는 변기 등 소치 가십의 진원지다. 열심히 준비한 소치올림픽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한 관계자들의 노력에도 가십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7일 보도했다. 오히려 부정적인 글을 올린 사이트를 감시하고 있다는 의혹만 부추기고 있다.

 ◆모리 "영어는 적의 언어”=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 조직위원장인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가 9일 기자회견에서 영어를 “적의 언어(enemy language)”라고 표현해 논란이 일었다. 한 영국인 기자가 “도쿄 조직위에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는데 어떤가”라고 묻자 “내가 어렸을 때 (영국·미국이 쓰는) 영어는 적의 언어였다”고 답했다. 모리는 이어 “10대에 영어를 배울 수도 있었지만 다른 걸 배우느라 바빴다”고 덧붙였다.

전영선, 소치=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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