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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노사관계 공공부문만 역주행" 전 장관의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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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경제부문 선임기자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공공부문 기관장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기관장의 주인의식이 결여되면서 공공기관 운영에 원칙이 무너지고 불합리한 관행이 독버섯처럼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했다. 7일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열린 국정현안 토론회(금요토크)에서다.

 이 전 장관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중심축이 민간에서 공공부문으로 옮겨갔다”고 진단했다. 그 근거로 구체적인 통계치를 들었다. 우선 노조 조직률이 민간은 10%인 데 비해 공공기관은 64%에 달한다는 것이다. 불법파업과 근로손실일수도 공공부문에서만 늘고 있다고 했다. 민간부문은 현대차 등 일부를 제외하곤 노사관계가 안정되는데, 공공부문만 역주행을 하고 있다는 질타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는 이유를 이 전 장관은 기관장에게서 찾았다. “기관장이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구성원의 저항과 이에 동조하는 일부 정치권을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좋은 게 좋다며 덕장(德將)인 양 본분을 망각해서라는 지적이다.

 장관 재임(2011~2013) 시절의 경험도 소개했다. ‘K공사는 불법파업이 끝난 뒤 위로금과 격려금으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훼손했다. 노조가 여는 회의에 참석해도 근무로 인정해 2007년에만 9636명에게 임금을 지급했다. 한전기술은 구조조정 반대파업이 일어나자 사업단 매각계획을 철회한 뒤 1469명의 호봉을 특별 승급해줬다. 관련 기관장을 해임하는 것과 같은 극약처방도 썼지만 이런 관행이 뿌리 뽑히지 않더라는 소회를 담아서다.

 이 전 장관은 토론회에 앞서 기자에게 “원칙 없는 공공기관 운영 사례를 들추면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여서 문제”라고 했다. 근본적인 치부를 드러내지 않고 숫자 위주의 개혁을 하려 해서 독버섯의 뿌리를 못 뽑는다는 말이다.

 그는 지금 진행되는 공공부문 개혁이 성공하려면 그저 “파티는 끝났다” “잘 못하면 해임할 것”이라는 질책만으론 안 된다고 했다. 추진 과정에서 마찰이 생겨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낙하산을 무조건 나쁘게만 보지 말라는 말도 했다. 경륜이 자산인 만큼 옥석을 가려 역량만 된다면 안 할 이유도 없다는 해석을 붙여서다. 그가 가장 우려한 것은 정치권의 입김이었다. “공무원은 정치활동이 제한되는데, 정부가 출자한 공공기관 임직원은 아무 제한을 받지 않는다. 정치권과의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 개혁을 따지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독버섯에 자양분을 주는 것은 아닌지, 이 전 장관의 지적을 흘려듣기엔 그 무게가 다르다.

김기찬 경제부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