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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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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양에서는 사생아로 유명인사가 된 사람들이 헤아릴 수없이 많다. 『데카메른』의 작자 「복카치오」, 화가인 「위틀리로」, 소설가로는 『춘희』의 작자 「뒤마·피스」 「잭·런던」 「장·쥐네」…. 정치가로는 얼마 전에 서독 수상자리를 물러난 「브란트」도 그 하나이다.
소설에서도 여주인공이 미혼모인 경우가 흔하다. 「로망·롤랑」의 명작 『매혹된 얼』의 여주인공 「아네트」도 결혼하지 않은 채 연인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궁극적인 자유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결혼을 거부했던 것이다.
물론 미혼모가 걸어야 할 길은 「롤랑」의 시대에도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2차 대전 전후를 그린 「사르트르」의 『자유의길』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마티우」의 연인 「마르셀」이 임신하자 둘의 해결책은 결국 낙태밖에는 없었다. 미혼모란 「마르셀」에게도 너무 힘에 겨운 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 세상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72년에 미국에서 『베이비·메이커』라는 영화가 상연된 적이 있다.
여주인공은 어린이가 없는 부부를 위해 수태하기로 계약을 맺고 10개월 동안의 생활비를 받는다. 그러나 체내에 새 생명이 싹트면서부터 그녀의 마음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은 인공수태며, 계약임신의 비인간성에 대한 문제를 던진 것이지만, 「미혼모」에 붙어 다니던 「스티그머」가 요즘에 와서는 거의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것이 오늘의 세태의 반영이기도 한 것이다. 미혼모를 끔찍한 죄로 여겨오던 우리나라에서도 이 문제가 차차 심각해져 가며 있다. 미혼모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문제는 미혼모에 따르는 「스티그머」는 여전한데 비겨 미혼모 방지나 미혼모 보호를 위한 대책이 너무나도 미흡하다는데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10대를 「틴에이저」라 부르는 대신에 「필리저」(Pillager)라고도 부른다.
「필」(Pill)이란 피임약을 말한다. 여기에 「Ager」를 붙인 신조어이다.
그만큼 미국의 10대들은 늘 「필」을 휴대하고 다닌다. 「데이트」로 외출하는 딸의 「핸드백」속에 「필」을 넣어주는 어머니조차 드물지 않다. 그러면서도 신생아의 17%가 사생아라고 한다.
「보봐르」는 『제2의 성』에서 남성은 「적출자」인데 비겨 여성은 「사생아」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를 고발했었다. 이런 각도에는 도시 「미혼모」란 크게 문제되지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미혼모이기 때문에 받아야 할 정신적 고통이 특히 10대의 소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더우기 혼전 임신으로 고민하는 어린 딸에게 너그러운 이해의 손결을 펴줄 만한 부모도 흔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올바른 피임교육을 받을 기회가 우리네 10대에게는 거의 없는 것이다. 단순한 윤리의 차원을 떠난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문제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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