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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0)<제자 이호벽>|<제38화>약사창업(11)|이호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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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특매의 열풍>
천일약방·조선매약·화평당·동화약방·모범 매약 등 5강이 한창 사세를 겨룰 무렵 판촉경쟁은 불꽃을 튀겼다.
지금도 신문·방송 등「매스컴」을 보면 당선전이 판을 치고 있지만 구매는 약방간판만 틀렸지 주력제품이 비슷 비슷(모두 영신구류·활명수 류·마약류를 다 내고 있었다)할 때라 싸움은 지금의 유가 아니었다. 거의 사운을 걸다시피 했다.
그래서 별별 희한한 판촉「아이디어」가 다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그중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아이디어」는「괘치 약」이라는 것이었다.
글자 그대로 『걸어 두는 약』으로 요즘의「쇼핑백」비슷한 약봉지에 소화제·영신구류·마약류 등 가정상비약 20여 가지를 넣어 집집마다 나눠줬다가 1년 뒤 약을 쓴 만큼 돈을 받는 제도였다. 약은 각 약방의 지역별 대리점이 맡아 늦가을에 돌리고 돈(대개는 쌀)은 이듬해 가을 추수할 때 가서 받았으며 남은 약봉지는 본사로 역송, 빈축을 채워 다시 돌리는 것이었다.
이 괘 치약은 교통이 불편한 시골동네까지 판매저변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이옥인의 모범 매 약이 고안해 낸 것인데 순박한 시골사람들이라 떼어먹힐 염려도 없고 그럴듯해 보였던지 동화약방을 비롯, 각 약방들이 모두 뒤를 따랐다.
괘 치약은 처음엔 집집마다 약을 사용한 만큼 쌀을 내놓기도 하고 혹은 직접 서울 본사로 부쳐 오기도 하는 등 얼핏 성공을 거두는가 했었다.
그러나 초창기 소비자를 무턱대고 순박하게 본 것은 역시 오산이었다. 약값은 대체로 거둬졌지만 이는 대리점이 사용 분을 확인, 독촉을 한 결과일 따름. 미처 안 쓰고 서울로 되돌아오는 약은 겉만 멀쩡하지 속은 도대체 원래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환약은 빼먹고 대신 밀가루반죽을 비벼 넣어 놓는가 하면 물약은 마시고 물감을 푼 물을 채워놓는 등 가관이었다.
처음 멋도 모르고 이 제도를 본뜬 동화약방 등은 온 약주고 반 돈을 받는 이「난센스」애 두 손을 들고 1년만에 걷어치웠다.
그러나 처음 고안을 한 모범 매약은 그래도 자신이 짜낸 「아이디어」가 아까왔던지 한3년 그대로 밀고 나가다가 약방 자체가 거덜이 나고 말았다.
앞서도 말한 동화약방 민인복씨가 시도한『지 우산 빌려주기』작전도 판촉선전술의 일례이다.
동화약방의 상호와 활명수란 글자를 박은 이 선전용 지 우산은 원가가 30여전 정도 먹힌 것인데 비만 오면 거리로 들고 나가 보증금을 10전씩 받고 빌려준 뒤 쓰고 나면 아무 약방에나 맡기도록 해서 나중에 동화 측이 회수하게 돼 있었다.
그러나 회수 율은 언제나 60∼7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떼어먹히는 것이었다.
떼어먹으면 20여 전이 득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경쟁사에선 역시 젊은 사장(당시 22, 23세)이 바보짓을 한다고 놀려대곤 했다.
그러나 미수 율은 애초부터 계산에 넣은 것. 우선은 수리 상·손해지만 떼어먹혀 봤자 비만 오면 다시 펴질 것이고 그러면 그만큼 더 선전이 되기 마련이니 아쉬울 것 하나 없다고 바보로 불린 젊은 사장은 오히려 즐거워했다.
판촉경쟁은 30연대 전후 약 업계를 휩쓴 특매바람이 그중 볼만했다.
특매란 도매상이나 소매상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일정한 액수의 약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놀이를 보내 주거나 선물을 준다는 조건으로 각종 약을 대 매출하는 것.
당시의 특매는 금강산관광을 시켜 주는 금강산특매, 중국여행을 시켜 주는 북경 특매로부터 진열 장 특매, 거울특매, 단선(부채)특매,「캘린더」특매 등 그 형태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특매「아이디어」가 백출하다 못해 나중에는 비행기에 태워 상공에서 장안을 구경시켜 주는 비행기특매까지 나왔다. 이는 천일약방이 선수를 쓴 것으로 당시는『떴 다 떴다 안창남, 굴렀다 굴렀다 엄복동』이란 구호가 나돌 정도로 갓 등장한 비행기인기가 대단했을 때여서 이 특매작전은 크게 「히트」를 쳤다. 순식간에 정해 놓은「묘 고약」과 천일영신 환 등 50원어치를 산 사람이 1백40명이나 돼 하루에 비행기를 다 태우지 못하고 이튿날까지 비행기를 장안 성공에 띄우는 등 야단법석이었다.
비행기 랬자「프로펠로」하나 짜 리에 불과하고 여의도에서 떠 남산과 북악산 위를 그냥 한바퀴 돌고 10여분만에 내리는「코스」였지만 비행기특매는 큰 인기였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거창하기로는 역시 특매가격 5백원 짜 리의 북경특매였다. 회령∼용정촌∼「하르빈」∼신경∼봉천∼무순∼북경∼여순의 순으로 돌며 북경에서는 나귀를 타고 만리장성까지 구경하는 호화판「코스」였다.
여행기간(1주일)중엔 마시고 먹는 일체비용 또한 회사부담으로 공짜였는데 개중에는 공짜 술이라고 너무 마시고 꼭지가 돌아 달리는 기관차를 올라타는 만용을 부리는 사람(부산의 최모씨)까지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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