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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전팔기의「공부마을」「고시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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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매미들의 합창과 시냇물 소리가 한여름 임간 마을의 정적을 스친다. 해발 2백여m의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동수막 마을은 청운의 꿈을 안고 삼복무더위에도 방문을 꽉 닫은 채 촌음을 쪼개며 1백 여명의 판·검사지망생들이 농가하숙방에서 고등고시공부를 하고있는「고시촌」-.
책 보따리를 지고 깊숙한 산사를 찾던 50년대의 고시공부와「재즈」와 소음을 긍정하면서 도시의 도서관에 틀어박히던 60대의 고시공부가 70대에 들어서면서는 그 공부방을 도회근교의 시골 농가로 옮겼다.
최근 몇 해 동안 사법·행정고시 준비생들 사이에 한적한 시골 민가로 들어가 공부를 하는 새로운 면학풍습이 널리 유행하면서 광주·과천·안양·청평·양주 등 서울근교 경기도 일대에는 이 같은「고시촌」들이 많이 생겨났다.
8년전 고시에 몇 번 실패한 유모씨가 고시공부를 단념하면서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소쌍리에 집2동을 지어「경기법률연구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실비 정도의 하숙비를 받으며 후진들의 고시공부 뒷바라지를 해준 것이「고시촌」의 시초였다. 몇 년 전에 생긴 양주군 대성리의 상낙향도 이 연구원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시촌은 월 1만4천원 안팎의 하숙비를 받고 공부방과 식사를 제공하는 농가들로 구성된 시골의 자연부락들이다.
이제 하숙이 하나의 부업이 된 각 고시촌은 몰려드는 고시준비생들로 방이 없어 못 받을 정도다.
관광객들의 유흥장이 된 사찰주변이나 도시공해를 피해 이같이 시골 민가로 찾아드는 고시준비생들의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 현재 광주군 동수막 마을 40여 가구의 농가는 고시준비생들이 안 들어있는 집이 거의 없다.
광주 경기법률연구원이 만원이 되자 68년께부터 고시준비생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이 마을은 해마다 합격자가 제일 많이 나온다는 얘기가 전파되면서 더욱 성황을 이루었다. 그 동안 동수막에 와서 고시공부를 한사람은 이 마을의 정일구씨(58) 말에 의하면 현재 있는 1백 여명을 포함해서 줄잡아 4백명이 넘는다고 한다.
고시준비생들의 하숙은 예외 없이 1인 1방-. 대부분이 졸업을 하고 2∼3년씩 고시를 본 사람들이지만 방학중에는 대학재학생도 들어온다. 하숙방은 항시 만원이기 때문에 선후배관계나 친구를 통해 소개받거나 인계해 주는게 상례다.
특히 이들 고시준비생들이 신경을 쓰는 문제는 공부하는 분위기와 하숙집의 부식이다. 그래서 하숙동료를 섣불리 소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족이나 애인의 면회까지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옆방에서 공부하는 동료를 고려, 심지어는 자기부인이 면회를 와도 방으로 들어 앉히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가져온 음식이나 용돈을 받고 곧 돌려보낸다.
동수막의 사충서원집에서 고시공부를 하고있는 이모씨는『이 마을의 고시준비생들은 자기공부를 위해 의식적으로 교우관계를 삼가고 하숙방 후속자 소개에도 신중한 배려를 한다』면서 1백 여명이 넘는 고시준비생들이 들어와 있지만『서로 전혀 종적인 연락이 없다』고 말한다.
기껏해야 월1회 정도 한집에서 공부를 하는 동지들끼리 막걸리「파티」를 여는게 이들의 낭만이라는 것.
지독한 사람들은 추석·구정 등의 명절에도 고향집에 안 내려가고 공부만 하는데 꼭 나가는 외출은 예비군 훈련과 서울에 책을 사러 나오는 일뿐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위장병을 앓고있는 이들 고시준비생들은 하숙집 부식에 매우 신경을 쓰는데, 대개 제일 연장자가 대모로 나서 주인과 협상을 벌인다.
고시촌의 농가들은 고시준비생들의 하숙을 반겨 환영한다. 이유는 하숙비를 받는다는 경제적인 것도 있겠지만 자기 자녀들도 따라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이 마을 동수상회 주인 유철근씨(43)는『마을에 고시준비생들이 몇 백명 왔었지만 한 사람도 동네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이 없었고 지난해에는 3명의 여자 고시준비생이 들어 왔었는데 오히려 남자들보다도 규율이 더 엄하고 행동이 모범적이어서 동네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찾아온 학생들의 사정에 못 이겨 방을 빌려주었던 고시촌 동수막 마을은 이제 서울의 각대학과 경찰전문학교 등을 나온 고시준비생들로 꽉 들어차『공부마을』이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었다. <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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