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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6)제자 이호벽|제38화-약사창업(7)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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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초기의 음양약>
인간사의 고민인 성병 약과 불임에 우는 부부약도 일찍부터 나왔다.
성병 약은 1900년대에 나온 공애당약방의 오림즉해가 선두가 아닌가싶다.
오림즉해는 일본에서 원료(이름은 불명)를 들여와 혼합한 첫 「캡슐」(1갑 20「캡슐) 제제이기도 했다.
당시는 다방골(기생골·지금의 다동) 때문에 임질이 상당히 퍼지고 있을 때였다.
『남자 치고 임질한번 안 걸리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바람둥이들이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객기를 부릴 정도였다.
그러나 내노라하는 다방을 단골도 정작 임질에 대한 상식은 백지상태나 마찬가지였다.「냉으로 생긴다」느니 「아니다」느니 제멋대로의 추측이 분분했을 뿐만 아니라 전염되는 줄도 잘 몰랐었다.
그래서 임질로 고생하는 사나이를 치료한답시고 집에서 기르는 동물과 함께 명석 속에 말아 넣는 등 해괴한 일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이럴 때 오림즉해와 같이 임균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 신약이 나왔으니 그 인기는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사흘이 멀다고 신문에 광고가 났다. 아기가 없어 애 타는 부부들을 위한 약은 화평당에서 나온 태양조경환과 자양환이 그 중 유명했다.
이중 태양조경환은 향부자를 주제로 한 자궁보약. 자궁을 덥게 해 누구든지 득남케 하는 신약이라는 부품한 선전과 포장 갑에 여인이 아기를 안고있는 그림은 넣어 불임 아낙네들의 초조한 마음을 끌었다.
약방주인 이응선은 비상약으로 이 약을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애 못 낳는 여자 얘기를 듣기만 하면 무료로 이 약을 제공했는데 그 뒤 약효 탓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그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아무 아무개 아내가 조경환을 먹고 아기를 얻엇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하기도 했다.
인삼을 주제로 한 자양환은 남자의 강장제답게 건장한 사내가 호랑이를 밟고 선 그림을 포장 갑에 넣어 조경환의 포장과 대조를 이뤘다. 이 자양환은 말하자면 요즘 애용되는 「××뎁보」의 효시격으로 상당히 팔려 선전도 많이 됐다.
앞서도 약간 소개를 했지만 태양조경환과 자양환을 만들어낸 이응선은 그 자신 한량에 속했다.
이응선은 4형제 중 둘째로 형(병선)도 지금의 을지로입구에서 한약건재상 공제당약방을 한 업계의 거물.
조카 이남순씨(60·성균관대 약대교수)에게서 듣기로는 이응선은 「콜레라」가 대유행한 1919년과 1920년 일본서 손도 씻고 화장실도 소독하는 살균소독제 석탄산을 들여와 일약 거부가 됐다.
그 때 「콜레라」는 어떻게나 위세를 떨쳤는지 무수한 사람들이 쓰러져갔으며 사람들도 「콜레라」에 대한 상식이 없어 환자가 죽으면 시체를 한강에 그대로 내다버리는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한강 물을 음료수 등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로 인해 장안이 다시 「콜레라」균에 오염되는 등 만연일로였다.
총독부에서도 보다못해 한강에 내버린 시체로부터 장안이 다시 오염되는 「콜레라」의 확산과정을 문화영화로 찍어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계몽상영을 해야할 지경이었다.
이응선이 이에 착안, 창업당시부터 친분이 두터운 인천 왕대인(요릿집 경영·중국인)으로부터 자금을 빌어 들여온 석탄산은 「히트」가 안될래야 안될 수 없었다.
장안은 물론 지방에서까지 어찌나 주문이 쇄도하는지 부르는 게 값이었으며 지방으로 보내는 소포는 전차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있는 종로우편국까지 사람들이 두 줄로 늘어서서 「릴레이」로 옮겨 발송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일거에 거금을 잡은 이응선은 원래가 통이 큰 사람.
종로우편국 뒤 조그만 단층기와집에서 살던 그는 대뜸 현 조계사 옆 골목에 지금도 남아있는 99간 짜리 큰집을 사들이고 공장도 화평당 뒤의 한옥 한 채를 새로 사들여 늘렸다.
조선매약을 인수한 것도 이 때의 일. 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한량으로서의 솜씨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바람기는 본부인과의 사이에 무남독녀 외딸밖에 못 두었기 때문이었던 지도 모른다.
인천·노량진·동대문 밖 별장·집 뒤채 등 곳곳에서 딴 살림을 차렸다. 그래서 새로 둔 소생이 4남1녀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사는 석탄산으로 이미 큰돈을 벌어놓고 있는데다가 새로 인수한 조선매약은 빈틈없는 사위 조종국에게, 화평당은 막내 동생 동선(초대 상공회의소회장·작고)에게 각각 맡겨 놓고있어 자신은 신경을 안 써도 될 만했다.
그의 노후는 별반 아쉬운 것 없는 「로맨스·그레이」 그것이었다. 본부인과의 사이엔 딸 하나밖에 못 두고 「로맨스·그레이」를 즐긴 이응선이 남자 강장제 자양환과 불임약 태양조경환 제조에 주력했다는 사실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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