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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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무릇 예술가의 생애는 역경 속에서 시작된다. 역경과 불행은 도리어 인간에게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 같다. 아니면 큰 뜻에 집효하는 사람은 세속사 따위에는 범연해지는 모양이다. 일상의 불행은 그런 소산일지도 모른다.
불후의 작곡가「차이코프스키」는 국영 광산의 감독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음악적인 재질은 혈통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집안의 누구도 그의 재능이 평균수준을 넘는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겨우 가정교사가 눈치를 채고 그를 격려해 주었지만, 오히려 그 교사는「차이코프스키」를 문학으로 이끌어 줄까 생각했다.
한편 그의 아버지는 직장을 따라 전전하는 생활이었기 때문에「차이코프스키」는 안정해서 무엇에 열중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가 15세가 되면서 어머니는「콜레라」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 무렵 아버지마저 사업에 실패해서 집안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셋방 한간과 빈 식탁』만이 재산의 전부였다. 그는 실로 뼈아프고 눈물겨운 가난과 실의를 체험해야 했다.
19세가 되면서 그는 비로소 법무부의 1등 서기관에 합격, 관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오만한 판사가 되는 것보다는 가난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더 보람있고 기쁜 일이라는 생각을 그는 스스로 품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때 법률학교에 다니면서 합창단에 들어가 음악의 경지에 몰입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그는 음악의 정도에 가까이 가는 길도 넘겨다 볼 수 있었고, 또 스승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단 역경과 불행은「차이코프스키」의 경우만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 고전음악가의 생애를 펼쳐 보아도 그 속에서 불우한 역경 속에서 꿋꿋이 일어선 예술가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악성「베토벤」은 병마와 싸우는 생애로 일관했었다. 귀가 멀어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만성위장병에 신음하며 소망 적인 생활을 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늘 술에 취해 있는 아버지와 식모살이를 하는 어머니의 틈에서 보냈었다. 그나마 어머니는 그가 18세 되던 해에 별세했다. 물질적인 고통에서부터 신체적인 고통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는 비극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나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바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베토벤」은 언젠가 이렇게 절규한 적도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불행했던 생애에 대한하나의 보상이리라.
오늘 우리나라의 한 청년이 세계의무대에서「그랑·프리」를 받고 개선장군처럼 서울에 입성하는 모습은 어딘지 도리어 어색한 느낌을 갖게 한다. 고전에의 향수랄까 불행한 예술가에 대한 경외랄까 그런 감정인지도 모른다. 시대와 함께 예술을 하는 자세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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