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법에는 없는 권리금 지킬 희망 있다?

조인스랜드

입력

업데이트

[최현주기자] 25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제2의 직업을 찾던 황모(57)씨. 평소 종종 들러 맥주를 마셨던 치킨호프집을 운영하기로 했다. 전용 85㎡ 크기의 상가를 임대보증금 6000만원에 월 260만원에 세 들었다. 보증금은 퇴직금으로 충분했지만 황씨는 1억원을 대출 받아야했다. 이전에 장사를 하고 있던 세입자에게 1억2000만원의 권리금을 줘야 했던 것. 내키지 않았지만 가게를 정리할 때 다음 세입자에게 돌려받을 돈이라고 생각하고 지급했다.

장사에 서투른 황씨는 예상보다 수익을 내지 못했고 빚만 남긴 채 3년만에 가게 문을 닫게 됐다. 보증금과 권리금을 돌려받아 빚을 갚으려던 황씨는 당황했다. 새로운 세입자에게 1억2000만원의 권리금을 요구했지만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출이자가 쌓여가는 상황이라 황씨는 어쩔 수 없이 권리금을 5000만원만 받고 가게를 비웠다. 황씨는 “내가 세를 들었을 때는 장사가 꽤 잘돼 권리금을 달라는 데로 줬지만 지금은 손님이 없어 더 달라고 버티기도 마땅찮다”며 “권리금 차액만큼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창업했거나 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권리금 때문에 당황한 적이 있을 것이다. 권리금은 상가 주인이 아닌 세입자끼리 관행적으로 주고 받는 돈이다. 이전 세입자가 점포를 운영하면서 닦아 놓은 인지도나 확보하나 고객 같은 무형의 가치와 갖춰둔 시설에 대한 보상의 성격이다.

유동인구와 단골손님이 많을수록, 시설 상태가 좋을수록 권리금은 비싸다. 영업수익이 좋을수록 권리금이 비싸지기 때문에 권리금이 비싼 상가는 이른바 좋은 상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권리금은 상가시장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손꼽힌다. 현행법상 관련 법규정이 없기 때문에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 황씨처럼 이전 세입자에게 지불한 만큼 권리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권리금은 매매가격이나 임대료처럼 시세라는 것이 없어 적정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지게 마련이다. 이전 세입자가 부르는 게 값인 셈이다.

권리금을 악용하는 상가주인도 있다. 서울 신사동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박모(48)씨의 경우를 보자. 7년째 곱창집을 운영하던 박씨는 어느날 상가 주인에게 가게를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늘 손님으로 북적이는 곱창집을 눈여겨보던 주인이 직접 장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갑자기 가게를 비우라는 것도 당황스럽지만 박씨를 더 기막히게 하는 것은 입점할 때 이전 세입자에게 준 권리금 8000만원을 모두 날리게 됐다는 것이다. 권리금을 줄 새 세입자가 주인인 탓이다.

제도화하면 세금 부담 커져

이런 저런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면서 권리금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 민주당에서 권리금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발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상가 권리금 보호 특별법에 따르면 임대차 계약서에 권리금을 명시해 임대보증금처럼 보호하게 된다.

권리금을 관할 세무서에 신고해 확정일자를 받고 주인이 새로운 세입자에게 계약서에 명시된 권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 박씨의 경우처럼 주인이 권리금을 주지 않고 동일업종 영업을 한다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하지만 권리금 책정에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호 범위를 정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시설권리금 뿐 아니라 바닥권리금(상권이나 입지), 영업권리금(단골손님 수 등) 등에 대한 가치 산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주인이 권리금을 보장하고 나서야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주인이 받은 돈이 아니라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입자 중에서도 꺼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권리금을 세무서에 신고하면 이에 따른 소득세 상승을 우려해서다.

임대보증금보다 더 부담스러운 권리금의 제도화는 필요하다. 무엇보다 권리금을 표준화할 수 있는 방안을 하루 빨리 모색해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하는 세입자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 빚어져서는 안된다. 제도화가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임대차 계약시 박씨처럼 주인에 의한 권리금 피해는 막을 수 있는 조항은 추가되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c)중앙일보조인스랜드. 무단전제-재배포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