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전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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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행운이란 어떻게 찾아와도 좋다. 그러나 기왕이면 갑자기 뜻밖에 찾아오는 게 더 좋다. 사람에게 안겨 주는 기쁨이 한층 더하기 때문이다.
불행이나 재난은 그렇지가 않다. 예고 없이 찾아드는 재난처럼 견디기 어려운 것도 없다. 재난은 예상할 수만 있다며 얼마든지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이 사람들은 여기고 있다.
홍수라나 재난도 예고 없이는 찾아들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 장마를 앞세우고, 장마는 또 태풍을 앞세운다.
기상대는 4일 태풍통보 제2호를 발표하고, 호남지방엔 호우주의보를 내렸다. 태풍「길더」가 드디어 장마전선을 동반하고 북진 중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도 장마철에 들어섰다는 공식선언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장마는 우리네 생활의식까지 틀 잡아 놓고야만다.
장마가 없는「유럽」에서는 꽃의 수명도 길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장마전의 꽃과 장마 뒤의 꽃은 다르다. 이래서인지 서구에서는 「존재」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존재한다고 본다. 무엇에나 영원성을 꿈꾸게 될 만도 하다.
집이 모두 석조인 것도 홍수에 떠내려갈 염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마다 장마를 겪고 엄청난 홍수로 피해를 입기 마련인 우리 나라에서는 집조차 언제까지나 남아있기를 바라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흙과 나무와 종이로 집을 짓게 됐는가보다. 다시 세우기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툭하면 쓰는 「물로 흘러 버린다」는 표현도 장마가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옛 기록에 보면 질병·「콜레라」·적리·「티푸스」등의 전염병은 으레 장마철에 제일 기승을 부린다. 죽는 사람도 이 동안에 제일 많았다.
정녕 모든 것을 물로 흘려버리는 것이 장마철이었다. 목숨도, 집도, 땅도 자칫하면 물로 흘려 버린다. 무상관과 체념에 찬 기질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재난은 예고가 있다. 꼭 막아지는 것은 아니다. 불행 역시 예상했다해서 그 슬픔을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대 희랍비극의 주인공들은 모두 불행을 예감한다.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언제 닥쳐올지를 알지 못할 뿐이다. 어김없이 엄습할 불행을 이때나 저때나 하고 기다리는 주인공의 괴로움을 관객들은 숨죽여가며 바라보며 공감한다.
그런 두려움이 우리네 옛 사람들에게는 있었다. 오히려 옛 희랍시민들보다 더 두려움이 컸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희랍에는 장마는 없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장마는 그리 두려운 것은 못된다. 장마철에 전염병으로 쓰러지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장마로 떠내려보내는 집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장마철 끈적거리는 습도도, 곰팡이 냄새도 고층「빌딩」의 냉방시설이며, 「알루미늄·샤시」가 많이 몰아냈다. 그러면서도 장마의 역겨운 맛과 두려움만은 그대로 살아있는 게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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