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우리의 연휴 첫날인 1월 30일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단독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설을 맞이한 우리 국민의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직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당시 일본 총리도 ICJ 단독 제소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러다 한·일 관계 악화를 우려한 미국의 만류로 접은 바 있다. 그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아베 총리가 1년 반 만에 또다시 단독 제소 방안을 거론한 건 양국은 물론 미국과 국제사회까지 가세해 힘겹게 쌓아온 외교적 성과를 일시에 무너뜨리려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가 아베의 발언에 대해 “무의미한 짓”이라고 일축하며 밝혔듯,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우리 고유의 영토로서 그 영유권을 ICJ에서 다투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또 일본의 일방적 제소만으로는 ICJ에서 재판이 성립할 수 없다. 그런데도 아베가 비현실적 방안을 다시 들고 나온 건 국제사회에 독도가 한·일 간의 ‘분쟁지역’이란 인상을 심어보겠다는 잔꾀에 불과하다.
아베의 이런 꼼수에 대해 국내에선 극히 일부지만 “ICJ 제소에 당당하게 응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답답한 심정은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니나, 이런 주장은 독도의 실효적·안정적 지배를 추진해 온 한국 외교의 기존 방향에서 벗어난다. 국제사법 절차가 상당 부분 국제정치 질서에 좌우돼 온 현실을 감안한다면 자칫 국가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기에 특별한 경각심을 요한다.
어차피 아베의 발언은 독도 문제에 아무런 현상 변화를 부를 수 없다. 일본 정부는 독도 전경을 찍은 사진 한 장 갖고 있지 못하다. ICJ에 결코 열리지 않을 재판을 일방적으로 요청하는 제스처 이상의 수단도 없다.
다급한 쪽은 일본이다. 영토 문제는 전쟁을 하지 않는 한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쪽이 우위에 있는 게 국제사회의 현실이요 불문율이다. 정부는 일본의 망언을 단호히 일축하되, 너무도 당연한 ‘우리 땅’이란 주장을 남발해 독도가 국제사회에 분쟁지역으로 비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허언에 불과한 아베의 주장에 냉정을 잃고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일본만 도와주는 꼴이다.
정부는 영토·과거사 문제와는 별도로 양국 관계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사상 최고조 단계인 한·일 갈등의 가장 큰 위험성은 양국 국민감정에 불이 붙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감정싸움이 격화하면 두 나라는 상당 기간 냉정을 찾기 어렵다. 한·일 정부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